미국 대통령 취임식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행사 비용을 전액 세금으로 충당하는 한국 등과 달리 미국은 그 비용을 대부분 기부금으로 조달해 기부액이 얼마냐에 따라 취임식 규모가 달라져서다.
이런 전통은 1949년 취임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 때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쪼들리는 정부 재정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날로 화려해지던 취임식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꽃을 피웠다. 배우 출신답게 각종 공연을 총망라해 취임식을 문화 축제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만달러로 이전보다 갑절이 된 취임식 비용은 모두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취임식 기부금은 계속 늘다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처음 1억달러를 넘었다. 이 기록은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가 다시 깰 전망이다. 지난주 기부금 잠정치가 1억7000만달러를 넘어서 취임식인 20일까지 2억달러는 무난할 전망이다. 돈이 너무 많이 모여 취임식 후 남은 돈은 ‘트럼프 도서관’ 건립비로 쓰기로 했을 정도다.
취임식 기부금 개별 한도를 정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금액 제한을 없앤 덕도 있지만 흥행에 성공한 원인은 따로 있다. 이른바 ‘VIP 티켓’이 불티나게 팔려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비용으로 100만달러 넘게 기부하거나 200만달러 이상 모금한 개인·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취임식 때 특별석에 앉는 것 외에 트럼프 대통령 만찬과 JD 밴스 부통령 만찬 등 6가지 행사마다 각각 6장의 입장권을 받는다. 2017년 취임식 때 기부에 인색했던 미국 빅테크와 자동차 기업들이 이번엔 ‘100만달러 클럽’에 가입한 배경이다.
미국 사업 때문에 어떻게든 트럼프 행정부와 인맥을 쌓아야 하는 현대자동차그룹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규정상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은 대통령 취임 때 기부할 수 없어 북미법인 명의로 냈다. 국내 다른 기업들도 VIP 티켓 구입 의사를 타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분간 한·미 정상 외교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각개격파에 나선 우리 기업들의 분투가 조그만 결실이라도 봤으면 한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