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밤길 운전하는 게 몇 배는 힘들다”던 선배들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데 어느 순간 갑작스레 공감하게 됐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는 밤엔 차선이 거의 안 보여 초보 시절처럼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다. 어쩔 수 없이 앞차의 후미등을 쫓아가다 보면 내가 차선을 넘지 않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진다. 옆 차선 차들의 갈지자 운전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밤 운전 때마다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형광 페인트로 차선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미국과 호주 등의 일부 도로에는 야광 차선이 있다고 한다. 이젠 서울 주요 도로에서도 야간·빗속 운전이 좀 더 안전해질 듯하다. ‘태양광 LED 도로표지병’ 덕분이다. 낮 동안 태양광으로 전력을 충전해 야간과 우천 때 차선을 선명하게 밝혀주는 도로 안전 시설물이다. 서울시는 올해 160㎞ 구간에 8만5000개를 매립할 계획인데, 이미 4만5000개가량을 올림픽대로 등에 설치했다.
일반 도로라고 해도 차선을 단순히 일반 페인트로 칠하고 마는 것은 아니다. 도료 위에 ‘유리알’(glass beads)을 도포하는데 자동차 전조등의 빛이 반사돼 차선을 잘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반사돼 돌아오는 빛의 양에 따라 차선의 ‘재귀반사성능’이 결정된다. 재귀반사성능이 낮을수록 야간 교통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차선 관련 민원이 급증하자 감사원이 도색공사 1년 미만 국도 19곳을 조사한 결과가 어제 나왔다. 도로교통법이 2018년부터 시간대나 기상 상태와 관계없이 차선의 시인성(視認性)을 확보하도록 규정한 것과 달리, 국토부의 표준시방서에는 우천이나 재설치 시의 재귀반사성능 조건이 여전히 ‘의무’가 아니라 ‘권장’ 사항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한 곳을 빼고는 국도 18곳이 시공 후에 비가 내릴 때의 반사성능 측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업재해를 놓고 대통령까지 나서 연일 기업을 질타하고 있다. 산재는 ‘사회적 타살’과 다름없다며 면허 취소, 징벌적 배상 등을 꺼내 들 태세다. 운전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역시 산재 예방만큼이나 중요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유념하길 바란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