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일제 전범기업 폭파한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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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마쓰시타 류이치 지음·송태욱 옮김/392쪽·2만2000원·힐데와소피



1974년 8월 30일 낮 12시 37분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입구에 시한폭탄이 설치돼 있다”는 것. 4분 후 같은 내용의 전화가 또 왔지만, 장난전화로 생각한 교환원은 이를 무시했다. 이로부터 4분 후 실제 폭탄이 터지면서 8명이 사망하고 37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폭탄 테러를 일으킨 단체는 극좌 계열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며 태평양전쟁 시절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응징하겠다고 벌인 일이었다.

신간은 일본의 유명 논픽션 작가가 테러범 중 한 명인 다이도지 마사시(2017년 옥사)와 그의 가족들을 인터뷰하며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쓴 것이다. 그가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독특하다.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다이도지가 저자가 쓴 ‘두붓집의 사계’를 보고 “깊이 감동했다”며 편지를 보내온 것. 1969년에 쓰인 이 책은 가업으로 두붓집을 물려받은 저자가 자신의 일상을 하이쿠(일본의 짧은 시)로 적은 것이었다. 무고한 인명을 숨지게 한 다이도지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인민을 구성하는 한 사람의 일상이나 개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테러 직후 희생자들을 일본 제국주의에 기생해 살찐 식민주의자라고 단정한 과거를 참회한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건 인명을 살상하는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테러범들도 이 점에서 참회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일제 식민주의에 대한 속죄 의식만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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