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딸이 기록한 ‘연쇄살인범 아빠’

4 weeks ago 4

◇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에이프릴 발라시오 지음·최윤영 옮김/512쪽·2만 원·반타


2009년 어느 날, 미국 위스콘신주 경찰은 한 통의 제보 전화를 받는다. “그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스위트하트 살인 사건’의 범인이 우리 아빠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40세가 된 신고자는 1980년 당시 11세 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마을의 10대 청소년 두 명이 실종됐는데, 그날 밤 아버지는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채 코가 부러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직후 가족이 급히 이사했다. 딸의 제보를 계기로 연쇄살인범 에드워드 웨인 에드워즈가 체포됐다. 그는 경찰에 최소 다섯 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 책은 아버지를 직접 신고한 연쇄살인범의 딸인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아버지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이다. 딸의 제보로 체포된 에드워즈는 사형 집행을 앞둔 2011년 교도소에서 숨졌다. 저자는 아버지를 신고했다는 죄책감과 더 빨리 행동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에 동시에 시달리며 모든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가 묘사하는 유년 시절은 지극히 불안정하고 폭력적이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땐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돌변해 가족을 위협하고 조종하려 했다. 자녀의 친구 관계나 옷차림까지 통제했고, 형제에게는 한 명이 항복할 때까지 몸싸움을 시키는 등 잔혹한 방식을 일삼았다. 아버지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사람을 지배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했는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연쇄살인범인 아버지에 대한 책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 범죄를 털어놓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우려도 있었다. “아이들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동생이 걱정하자, 저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응수한다. 저자는 잊고 있던 악몽을 꺼내며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전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고통스러울 정도의 사실적인 묘사와 솔직한 고백이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의 향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e글e글

  •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

  •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