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한 항암제보다 ‘암과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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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김범석 지음/428쪽·2만4000원·흐름출판


“오늘 하루가 기적이다. 암에 걸린 것이 불행이 아니라 암에 걸리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은 당연하지 않다.”

생과 사의 최전선에 오래 있다 보면 삶을 통달하게 되는 걸까. 20여 년간 암 환자를 치료하고 종양을 연구해온 서울대 종양내과 교수가 쓴 이 책은 의학과 역사, 자전적 에세이를 넘나든다. 특히 죽음을 사유하는 시선이 무척 담담하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삶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를 깨닫는 순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일관되게 강변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은 죽을 때까지 항암 치료를 하는 빈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완치가 어려운 4기 암 환자가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고 독한 항암제를 쓰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 때문에 말기 암 환자의 ‘죽음의 질’은 엉망이 되는 경우가 잦다.

저자는 조심스럽게, 암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길 제안한다. 암과 공존하자는 주장이다. 암이 더 커지지 않도록 억제하면서 조금 더 오래 살아가는 전략이다.

호스피스(특수요양원) 완화 의료에 대한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곳’이란 게 저자의 관점이다. 한국은 해마다 암으로 숨지는 이들이 8만 명 안팎이지만 이 가운데 호스피스 이용 환자는 23%에 불과하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다. 죽음을 인생의 일부로 보자는 조언이다. 암과의 공존을 택했을 때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것처럼,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남은 생을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고 권한다.

저자는 죽음을 ‘경계의 소멸’이라고 부른다. 살아있는 동안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던 몸의 경계가 죽음으로 허물어진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다. 누구나 맞이하는 필연이기도 하다. 말처럼 쉽지야 않겠지만, 차분히 음미할 대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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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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