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늑대판 라이온킹’… 최약체 울프가 위대한 리더로

4 weeks ago 5

美 옐로스톤 국립공원 늑대 복원
15년 관찰일지 1만여 쪽 작성하며, 야생 늑대 무리 생태계 변화 기록
최초로 방사된 새끼 수컷 늑대가 예상 깨고 우두머리로 성장하기도
◇울프 8 (늑대의 마음에서 함께 사는 질서를 배우다)/릭 매킨타이어 지음·노만수 옮김/352쪽·2만3000원·사계절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들. 저자는 6175일간 늑대 무리를 세밀히 관찰하며,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람 못지않은 일상생활과 각각의 개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들. 저자는 6175일간 늑대 무리를 세밀히 관찰하며,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람 못지않은 일상생활과 각각의 개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제인 구달의 ‘곰베의 침팬지’(1986년) 늑대 판을 읽는 느낌이랄까. 세계 최고의 침팬지 행동 연구 권위자인 구달이 이 책의 저자를 “늑대 행동에 관한 절대 권위자”라고 불렀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십 년간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에서 침팬지 무리와 함께한 구달과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의 레인저, 옐로스톤 국립공원 늑대 복원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늑대들을 지켜본 저자의 삶과 연구 방식이 참 많이 닮은 것도 그렇다.

이 책은 인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70년 동안 늑대가 사라졌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프로젝트를 관찰하고 서술한 기록이다. 저자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10여 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생의 늑대 무리를 보며 늑대와 생태계의 변화를 정리했다. 그렇다고 지루한 학술 연구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저자의 눈을 통해 각각의 늑대가 보여주는 개성과 그들 사이의 돌봄, 연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잘 만든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울프 8’은 복원 프로젝트를 위해 최초로 방사된 늑대 중 한 마리. 그런데 저자는 원래 무리 중 가장 작고 털도 볼품없던 이 잿빛 새끼 수컷 늑대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립공원에서 가장 위대한 늑대 수컷으로 성장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로즈크리크 무리의 알파 수컷 8번은 사냥감을 독차지할 수도 있고, 굴로 가져가서 친자식에게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난가을 입양한 한 살배기 의붓자식들에게 기꺼이 식량을 나눠 준 것이다. 나는 나중에 모든 늑대가 8번처럼 관대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늑대의 성격도 각양각색이라, 어떤 놈은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놈은 가족 구성원이나 적대적인 무리에게 필요 이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오직 일부만 다른 늑대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푼다.”(9장 ‘8번의 새 가족’에서)

울프 8을 비롯해 늑대 무리가 보여주는 지배욕, 질투, 용기, 배려, 애정, 충성심 등 다채로운 감정과 성격을 보고 있으면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 나아가 저자는 친부가 아닌데도 자기를 길러준 아버지 8번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아 다른 늑대 무리를 이끄는 21번을 서술하며, 인간행동학의 오랜 질문인 ‘자녀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인가, 환경인가’라는 가볍지 않은 물음을 던진다.

경이로운 건 침팬지와 달리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늑대 무리를 관찰하기 위해 쏟은 저자의 노력이다. 무려 6175일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고, 작성한 관찰일지만 1만2000여 쪽에 이른다. 늑대가 사라지면서 파괴됐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생태계는 늑대 복원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밑바탕에는 저자와 같은 사람의 노력이 숨어 있는 게 사실이다. 책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기후 위기 극복도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희망이 들었다. 원제 ‘The Rise of Wolf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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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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