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못하는 그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도둑맞은 집중력’[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1 week ago 5

[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일하거나 책을 보다 수시로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 소셜미디어를 확인하고 링크의 파도를 타고 여기저기 누비다 보면 아뿔싸!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던 거 얼른 해야지’ 결심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멀리 두거나 서랍에 넣어놓고 집중하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어, 이거 내 이야긴데?’라는 생각이 드는가. 당신 뿐만이 아니다. 현대인 대다수가 겪는 현상이다.

의지가 약하다고 스스로를 탓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의 저자인 영국 기자 요한 하리는 사람들이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요인을 파헤친다.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거대 테크 기업은 수많은 직원에게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더 오래 머물게 만드는 치밀한 방안을 고안하라고 끊임없이 주문한다.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수면 부족, 수입 감소나 해고에 대한 불안으로 고조되는 스트레스도 한 몫 한다. 순식간에 혈당 수치를 높이곤 얼마 안 돼 이를 급락하게 만드는 가공식품,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해 흥미를 잃게 하는 교육까지,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도둑들’이 사방에 포진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구조를 들여다보면 오랜 시간 집중하는 이가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다.

뉴욕타임스(NYT),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가디언 등에 기고해 온 저자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호주 덴마크 등 3만 마일을 이동하며 각국의 분야별 전문가를 250명 넘게 만났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지난해 4월 국내 출간된 ‘도둑맞은 집중력’은 집중력 하락으로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지난달 말까지, 1년 4개월간 30만 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지금도 한 달 평균 1만 권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편집자인 강태영 어크로스 차장(38)을 10일 서울 마포구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만났다. 강 차장은 “독자들이 이처럼 호응할 줄은 몰랐다”며 “놀랍고 신나는 경험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도둑맞은 집중력’ 편집자인 강태영 어크로스 차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도둑맞은 집중력’ 편집자인 강태영 어크로스 차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시작은 어크로스에서 책을 낸 한 일간지 기자의 추천이었다. 2022년 미국 영국 등에서 출간된 이 책에 대한 현지 리뷰를 본 기자는 “개인이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을 담은 기존 책과는 결이 다르다”며 출간을 검토해보라고 권했다. 강 차장이 아마존에서 리뷰와 원서 내용을 확인해보니 흥미로웠다.

“해외에서 출간되기 전 국내 출판사에도 제안서가 왔지만 눈여겨보진 않았어요. 저자의 책이 이전에 국내에 나온 적이 있는데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거든요.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이미 여러 권 나왔고요. 그런데 책 내용을 보니 기존에 나온 집중력 관련 책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판권 구매가 가능한지 급히 알아봤죠. 마감까지 이틀 밖에 안 남았더라고요.”

다른 출판사도 두 군데 정도가 판권을 사려 했지만 어크로스가 가격을 조금 더 높게 써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강 차장은 “판권은 별로 비싸지 않았다. 에이전시가 제시한 수준보다 조금 더 썼다”고 말했다.

당초 예상한 책 판매량은 3만 권이었다.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인데다 주요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고, 저자 스스로가 아이폰과 맥북을 사용하지 않고 완전한 오프라인 상태로 3개월을 보내기 위해 미국 작은 바닷가 마을로 가서 지낸 이야기 등 개인의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있었어요. 수많은 전문가를 만나 확인한 연구 결과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느껴졌죠. 한데 한국 독자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솔직히 확신이 서진 않았습니다.”

먼저 제목을 우리말로 어떻게 지을지 고민했다. 원제는 ‘Stolen Focus‘. 번역하면 ‘빼앗긴 주의력’ 정도가 된다.

“‘빼앗긴 주의력’은 눈에 확 띄거나 가슴에 와 닿지 않았어요. 위기의식을 건드리는 단어를 찾아야 했죠. 김하현 번역가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제목을 뽑아냈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사람이 있고 집중력이 흩어지는 그림을 여러 개 시도했다.

“충격적인 느낌을 담고 싶었는데 그림으로는 표현이 잘 안 되더라고요. 형광 주황색 바탕에 한글 제목이 위에, 영어 제목이 아래에 있고 글씨들이 흩어져 날아가는 지금 표지는 B컷이었어요. 바탕색으로 형광 초록색도 고민했는데 주황색이 눈길을 더 끈다고 판단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매체와 애덤 그랜트(‘싱크 어게인’ 저자,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클린턴 등 유명 인사의 호평이 많아 국내 유명인사의 추천사는 받지 않았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호응을 얻었다. 공감 가는 문장을 밑줄 긋거나 형광펜으로 칠한 뒤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독자가 많았다. ‘나는 살면서 트위터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활동했을 때(팔로어와 리트윗의 측면에서)가 인간으로서 가장 쓸모없을 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의 나는 관심이 필요했고, 지나치게 단순했으며, 독설을 잘 퍼부었다’, ‘나는 책을 한가득 사놓고는 죄책감을 느끼며 곁눈질로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트윗 하나만 더 올리고’가 대표적이다. 독자들은 “진심 뼈 때리는 썰”이라고 썼다.

‘도둑맞은 집중력’ 독자가 공감하는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책 읽다가 느닷없이 뼈 맞은 썰푼다’고 썼다.  어크로스 제공

‘도둑맞은 집중력’ 독자가 공감하는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책 읽다가 느닷없이 뼈 맞은 썰푼다’고 썼다. 어크로스 제공

강 차장이 ‘18시간 내내 깨어있다면(아침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깨어있다면) 하루가 끝날 무렵의 반응 속도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일 때와 같다’는 연구 결과를 쓴 책 속 문장을 올리자 조회수는 109만 회를 기록했다.

책을 읽고 트위터를 그만둔 이도 적지 않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잃고 트위터를 중단했다가 돌아왔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트친’이 없어지면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사라졌나보다”라고 했다. “도서관에 대출 신청을 했는데 1년 기다려야 한다”며 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유명 유튜버가 저자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데이터과학자인 한국인 유튜버 ‘돌돌콩’이 저자를 인터뷰한 영상이 지난해 7월 공개됐다. 2개월 뒤인 지난해 9월 조승연 작가가 저자를 인터뷰한 영상도 올라왔다. 책 판매량은 두 배 가량 치솟았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스마트폰 중독에서 탈출하려는 가수 코드 쿤스트(코쿤)가 10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한 후 금단 증상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지난해 8월 소개되는 등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독자들이 제목 ‘도둑맞은 집중력’을 ‘집중맞은 도둑력’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아 웃음을 터뜨리게 하자 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에 ‘집중맞은 도둑력’이라고 쓴 책 커버를 별도로 제작한 ‘페이크 커버 에디션’을 만들었다. 검정색 바탕의 이 커버는 원래 책 표지에 씌우고 벗길 수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 책들 중 검은색 바탕의 페이크 커버 에디션 ‘집중맞은 도둑력’이 있다. 독자들이 제목을 ‘집중맞은 도둑력’으로 헷갈려하는 현상이 밈으로 만들어지며 웃음을 선사하자 제작했다.  어크로스 제공

‘도둑맞은 집중력’ 책들 중 검은색 바탕의 페이크 커버 에디션 ‘집중맞은 도둑력’이 있다. 독자들이 제목을 ‘집중맞은 도둑력’으로 헷갈려하는 현상이 밈으로 만들어지며 웃음을 선사하자 제작했다. 어크로스 제공

“페이크 커버 에디션은 하루가 채 안 돼 1500개가 다 나갔어요. 추가 제작하는데 일주일이 걸려서 독자들이 기다려야했죠. 총 5000권이 모두 판매됐어요. 독자들이 이 책을 가지고 놀이처럼 즐기는 게 재미있고 또 고마웠어요.”

여름 휴가철을 맞아 표지에 얼음 디자인을 넣어 만든 ‘아이스 에디션’도 1만 5000권이 나갔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종로구의 서점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읽는 ‘집중력 도둑 잡는 날’ 행사를 열었다. 토요일 오전 9시 반에 시작했는데도 성황을 이뤘다. 참가자들은 ‘집에서 혼자 했으면 못 했을 것 같다’, ‘한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행복하고 뿌듯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이어 김겨울 작가가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의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의 서점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열린 ‘집중력 도둑 잡는 날’ 행사. 참가자들은 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읽었다. 어크로스 제공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의 서점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열린 ‘집중력 도둑 잡는 날’ 행사. 참가자들은 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읽었다. 어크로스 제공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의 서점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열린 ‘집중력 도둑 잡는 날’ 행사에서 김겨울 작가가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했다.  어크로스 제공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의 서점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열린 ‘집중력 도둑 잡는 날’ 행사에서 김겨울 작가가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했다. 어크로스 제공

“참가자들이 책 읽는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서 드렸어요. 떡케익과 따뜻한 차도 준비했고요. ‘디지털 디톡스’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마련했습니다.”

책을 주로 구입한 이는 20, 30대 여성이라고 한다. 책을 가장 많이 사는 그룹이 40대 여성임을 고려하면 젊은층의 호응이 더 컸던 것. 집중력을 뺏는 여러 요인 중 각자 상황에 따라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 달랐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는 아이들이 늘어난 건 마음껏 뛰어놀며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연스레 몰입할 기회를 뺏긴 채 주입식 교육을 강요받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부모들의 관심을 끌었다.

강 차장은 스스로도 집중력을 높이는 시도를 해 봤다고 한다.

“마케팅 때문에 평소 스마트폰을 많이 씁니다. 한데 업무 이외 시간에도 계속 보다보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하루에 11시간일 때도 있더라고요. 충격 받았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출퇴근하고 산책도 해 보니 한결 편안해지는 걸 실감했어요. 직접 체험한 걸 소셜미디어로 공유하니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저자는 집중력을 뺏는 주요 요인이 소셜미디어라고 비판하는데 책 마케팅과 각종 리뷰, 밈을 소셜미디어로 하는 현상이 아이러니하긴 했습니다.(웃음)”

저자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개인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근본적인 요인은 사회 구조 때문이기에 이를 바꾸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강 차장은 “독자 반응이 없으면 고민이지만 책이 잘 될 때는 (판매량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며 웃었다.

‘도둑맞은 집중력’ 편집자인 강태영 어크로스 차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도둑맞은 집중력’ 편집자인 강태영 어크로스 차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강 차장은 2014년 편집자 업무를 시작해 올해로 10년이 된다. 30만 권이 판매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지음·김하현 옮긴·어크로스·2021년)도 그가 편집을 담당했다.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가는 여행기 형식으로 그들의 삶과 작품 속 지혜를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내용이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숙한 제안을 하는 이른바 ‘어른의 책’을 만들고 싶어요. ‘유튜브에 다 있어’라고들 하지만 책으로 볼 때 더 좋은 콘텐츠가 많습니다. 유튜브가 대체할 수 없는 내용을 책으로 담아내겠습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2023년)은….

길지 않은 시간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이유를 영국 기자가 파헤쳤다. 뉴욕타임스(NYT),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가디언 등에 기고하는 저자 요한 하리는 집중력 하락이 심각해지자 미국 캐나다 러시아 호주 덴마크 등 3만 마일을 이동하며 각국의 분야별 전문가를 250명 이상 만났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신경과학자, 사회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등을 인터뷰하고 각종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를 정리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집중력을 빼앗아 가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거대 테크 기업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치밀한 방안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멀티태스킹, 과도한 노동이나 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수면 부족도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수입 감소나 해고에 대한 불안으로 높아지는 스트레스, 순식간에 혈당 수치를 높이곤 얼마 안 돼 이를 급락하게 만드는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해 흥미를 잃게 하는 교육 방식까지,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도둑들’은 사방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주장이 아니다. 저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자세하게 제시해 설득력을 높인다.

저자는 스스로도 인터넷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심각한 중독 상태라고 털어놓는다. 이에 아이폰과 맥북을 사용하지 않고 완전한 오프라인 상태로 3개월을 보내기 위해 미국 작은 바닷가 마을인 프로빈스타운에서 지내기로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녹록치 않다. 인터넷이 안 되는 휴대전화를 살 수가 없었던 것. 매장 직원은 당혹스러워하고, 주위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일부는 부러워하기도 한다. 결국 인터넷이 안 되는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다!

완전한 오프라인 상태가 되자 저자는 세상과 단절돼 진공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에 안절부절 못한다. 시간이 지나자 차츰 불안감이 사라지고 산책하거나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몰입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구조는 가속화되고 있다. 거대 테크 기업이 선두에 있다. 구글 엔지니어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는 구글이 직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는 상품을 개발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광고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엔지니어는 e메일이 올 때마다 휴대전화가 울리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몇 주 뒤 이는 현실이 됐다. 전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메일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됐다. 이런 일은 실리콘밸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러 페이지를 일일이 넘길 필요 없이 스크롤만 내리면 정보가 계속 나오게 한 무한 스크롤은 사람들이 더 오래 인터넷을 보게 만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엔지니어였던 기욤 샬로는 사용자가 잔인하고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영상을 볼 때 시청 시간이 늘어나는 점을 이용해 이런 영상을 추천하도록 알고리즘이 작동한다고 폭로했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은 현대 사회에 필요한 방식으로 인식되지만 오히려 효율을 떨어뜨린다. 각각의 일에 온전히 몰입해야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여러 일을 하다보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 이는 단순히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유타대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스트레이어는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이 사망 사고를 급증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운전 시뮬레이터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운전 중 휴대전화 문자 수신 같은 방해를 받을 때 운전 능력이 손상되는 정도를 관찰한 결과 술을 마셨을 때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힌다.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거나 수면의 질이 나쁘면 집중하기 어렵다. 미니애폴리스대 신경과학 및 심리학 교수 록산느 프리처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 화면 속 사진을 바꾸거나 공을 던지는데 대한 반응 속도를 연구한 결과 18시간 내내 깨어있다면(아침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깨어있다면) 하루가 끝날 무렵의 반응 속도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일 때와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일하는데다 공부 또는 업무가 끝난 뒤에는 인터넷을 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가공식품도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가공식품을 섭취하면 혈당이 급속히 치솟아 에너지를 곧바로 낼 수 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혈당이 급감해 집중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해야 하지만 식품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많은 가공 식품은 도처에 있고 쉽게 살 수 있다. 영국 영양 전문가 데일 피넉은 “만약 당신이 자동차 엔진에 샴푸를 넣는다면 엔진이 고장 났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 전역에서는 인간의 연료로 쓰였던 것과는 매우 동떨어진 물건을 매일 자기 몸에 밀어 넣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이유도 짚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놀이 방식을 찾아내고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면 푹 빠져들며 몰입한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부모와 학교가 정해준대로 수업에 참여하고 지식을 배운다. 주입식 교육과 평가를 중시하는 제도는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중학교의 교사 조디 마우리시는 불안 문제를 진단받은 학생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뭔가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걱정했지만 1년간 지켜본 결과는 놀라웠다. 한 소년은 숲에 요새를 지었다. 또 다른 소년은 모형 보트를 만들기 시작했고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를 완성했다. 그 후 수륙양용마차 만들기에 나섰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소년은 나무 조각, 이쑤시개, 스티로폼 등 적합한 재료를 찾아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아냈다.

아이들의 뇌는 약물에 취약한데도 손쉽게 ADHD 진단을 내리고 각성제를 처방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는 ADHD 진단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영국 아동정신의학자인 사미 티미미는 11살 마이클이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ADHD 진단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해 아버지와 다시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한 결과 집중력 문제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저자는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인 요인이 강화되고 있기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집중력을 높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주요 사안별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정치권이 제도를 바꾸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태양 광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대기권의 중요 부분)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한 결과 기업들이 헤어스프레이를 만들 때 프레온 가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한다. 또 과도한 노동 시간을 요구하는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 안전망 확대를 통해 불안의 수위를 낮춰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실제 시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필요한 조치다. 현재 교육 제도를 점검하고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건 신속히 이행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거대 테크 기업을 영국 BBC처럼 공영화하자는 주장은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중력을 주제로 현대 사회가 지닌 분야별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한 가지 문제는 여러 구조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논리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책을 덮고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 음식을 먹거나 늦은 시간 잠 잘 때 혹은 여러 일을 동시에 할 때, 잠깐 멈춰 스스로와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원제는 ‘Stole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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