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레버리지 출시 후
한국 증시 변동성 확 커져
개인투자자 보호 신경써야
패시브 장기 투자가 옳은 길
일본 버블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숫자가 닛케이지수 3만8915다. 1989년 12월 29일에 세운 이 기록은 무려 34년간 깨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을 방문했던 모 금융회사 대표는 “긴자 거리에 벤츠가 넘쳐났고 일본인들은 흥청거리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뒤의 일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급격한 금리인상과 대출 규제를 버티지 못한 일본 증시는 이듬해인 1990년 초부터 곤두박질쳤다. 그 해에만 39%가 하락했다. 그리고 더 치명적인 부동산 시장 붕괴로 일본인들은 깊은 고통에 빠졌다. 잃어버린 30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반면 같은 시기 미국에선 401K의 저변이 확산되고 있었다. 월급의 일부를 떼어 주식·펀드에 자동 투자하는 퇴직연금인 401K는 미국인들에게 든든한 노후 안전판 역할을 했다. 지금도 미국 가입자의 3분의 2는 타깃데이트펀드(TDF)를 통해 간접 투자한다. 개별 종목을 고르지 않고 투자 자산을 배분하며, 은퇴까지 팔지 않는다. 그 결과 수백만달러 자산가가 속출한다.
401K와 같은 연금 계좌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의 충동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데 있다. 짧은 기간 큰 돈을 벌고 싶은 탐욕을 제거한 설계 덕분에 오랫동안 부를 축적할 수 있다. 미국 중산층 형성의 핵심이자 자본시장 발전의 촉매인 셈이다.
한국은 일본과 미국 중 어느 길을 걷게 될까. 최근 한국 증시는 롤러코스터 장세의 연속이다. 지난 8~9일에는 코스피가 하루 8%씩 폭락과 폭등을 기록하는가 하면 연일 급등락이 이어지고 있다. 요동치는 주가를 보면서 투자자들의 조급증은 더욱 커져간다. 빚투(빚내서 투자)가 급속도로 불어난 게 그 증거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빚투 조이기에 나섰는데, 열풍을 잠재우기엔 버거운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하순 등장한 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투기판을 키웠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단일 종목의 등락률을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는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기초자산이 투자자들에게 매우 친숙한데다 금융당국이 허용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그럴싸한 안도감을 준다. 삼전닉스의 수백조원 이익 전망이 뒷받침되니 손해는 안 볼 거라는 믿음도 한 몫 한다. 친구나 직장 동료 따라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까지 가세해 출시 초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다. 이 상품으로 인해 한국 증시의 변동성 우려가 부쩍 커졌다.
안타깝게도 더 빠른 수익을 쫓는 탐욕은 파국을 부르기 십상이다. 주가가 출렁거릴수록 ‘음의 복리효과’로 원금이 깎여나간다. 더구나 마통(마이너스통장)과 신용융자를 끌어다가 레버리지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에겐 위태로운 도박이다. 낙관론과 빚투의 끝에는 여지없이 ‘민스키 모멘트’가 도사리고 있다. 시장이 맥없이 폭락할 때 섣부른 투자를 후회해본들 늦은 것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2018년 CNBC 인터뷰에서 찰리 멍거의 발언을 언급한 적이 있다. “내 파트너 찰리는 총명한 사람이 파산하는 방법은 세 가지라고 말했다. 술, 여자, 그리고 레버리지다.” 이 중에 진짜는 레버리지라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인 모건 하우절도 그의 책 ‘불변의 법칙’에서 이렇게 썼다. “주식은 장기적으론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빨리 수익을 내려고 하면 가혹한 손실을 안겨준다.”
금융당국은 삼전닉스 레버리지의 부작용을 놓쳐선 안된다. 미국·홍콩 등 해외로 나가는 돈을 국내로 붙잡자는 명분도 좋고, 상품 다양성과 투자자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출시 타이밍은 엇박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뜩이나 포모(FOMO·소외 공포)에 멍든 개미들에게 초고위험 투자의 문을 활짝 열어준 꼴이기 때문이다. 코스피 8000 시대를 맞이한 한국 자본시장의 성장 모멘텀을 살리려면 건전한 투자 관행이 자리잡아야 한다.
‘국내 ETF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의 말이 떠오른다. “패시브 장기 투자는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왜 불확실성에 몸을 던지는가.” 더구나 ‘나스닥 100’ 같은 지수나 기술주(테크) ETF에 장기 투자하면 남부럽지 않은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중요한 건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게임을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느냐다.
[황인혁 국차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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