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삼청동·창신동은 채석장... 이곳 돌 가져다 궁궐, 도성 쌓았다 [서울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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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철 기자 hcbae@mk.co.kr
입력 :  2024-09-1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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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신을 떠받친 한양의 채석장

낙산(낙타산)의 좌룡정 활터.

낙산(낙타산)의 좌룡정 활터. 남자들이 낙산 일원의 성벽에서 활을 쏘고 있다. 활을 겨누는 방향이 창신동 돌산이다. 창신동 돌산은 낙산의 자락으로 풍광이 수려했다. 하지만 오랜기간 채석장으로 이용되면서 황폐화됐다. [국립민속박물관]

좌룡청 활터 각석.

좌룡청 활터 각석. 활터는 사라졌고 좌룡정 각자만 낙산 성벽에 남았다. [배한철기자]

“광화문의 선단석(縇端石·아치 밑을 받치는 돌)을 영풍정(映楓亭)에서 떼어왔다. 훈련도감(訓鍊都監·한성부 수비군)의 자원 부역군 725명이 끌고 왔다.”

1865년(고종 2)~1868년(고종 5) 경복궁 중건과정을 적은 <경복궁영건일기>의 내용이다. 영풍정은 종로 창신동 돌산에 있던 정자다. 19세기 편찬된 <동국여지비고>는 “동대문 밖 연미정동(燕尾亭洞)에 훈련도감 군마의 기예를 시험하는 곳이 있고 영풍정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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