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파상 공세에 드라마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드라마 한 편 제작에 수백억 원 투자는 흔해졌다. 업계에선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과 비교해 드라마 제작비가 3배 이상 늘었다는 푸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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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제작비 500억원 넘는 드라마 ‘수두룩’
23일 방송계에 따르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2·3의 제작비는 약 1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1·2(약 700억 원) △디즈니플러스 ‘무빙’(약 650억 원)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약 600억 원) △tvN ‘눈물의 여왕’(약 560억 원) △tvN ‘별들에게 물어봐’(약 500억 원) 등이 제작비 500억 원 이상 쓰인 것으로 파악된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한국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3억~5억 원에 불과했다. 한국 드라마는 대개 16회 분량으로, 총 제작비는 100억 원이 안 됐던 셈이다. JTBC 흥행작인 ‘SKY캐슬’(2018년)의 제작비가 약 75억 원이었던 것을 비롯해 △공효진, 강하늘 주연의 KBS2 ‘동백꽃 필 무렵’(2019년) 110억 원 △한류스타 송중기·송혜교가 출연한 KBS2 ‘태양의 후예’(2016년) 130억 원 등 대작 드라마도 총 제작비 200억 원이 안 됐다.
하지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들의 등장 이후 환경이 급변했다. 이들의 과감한 투자는 콘텐츠의 질적 성장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지만, 배우·제작진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자본력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스타 제작진과 배우들을 섭외해 오리지널 시리즈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몸값이 급등한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글로벌 OTT 등장 이후 스타급 배우, 창작진의 몸값이 나날이 치솟았다”며 “자본력이 달리는 국내 OTT와 제작사는 몸값을 맞추기 어려운 수준이다.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스타들의 몸값 천정부지…“한계 봉착”
한 번 올라간 출연료는 내려오지 않았고, 제작사들은 비싼 몸값을 치르며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래도 해외 판매를 하거나 OTT에 공급하면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경기 불황에 광고 시장이 위축되면서 주요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성을 줄이기 시작했고 수익을 내긴 커녕 편성조차 받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2020년 98편이었던 TV·OTT 편성 드라마는 2022년 141편까지 늘어난 뒤 △2023년 123편 △2024년 107편 등으로 2년째 감소세를 보였다. A제작사 대표는 “정확히 얘기하자면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한계 상황”이라면서 “배우들의 출연료 자진 삭감 등 자정 노력 없이 드라마 산업은 생존이 힘들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다만 일각에선 ‘오징어 게임 시즌1’의 글로벌 빅히트 후 과열됐던 K콘텐츠 시장이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B제작사 대표는 “K콘텐츠 수혜를 기대하는 무분별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드라마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됐다”며 “거품이 꺼지고 업계가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 현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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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포스터(사진=넷플릭스) |
가성비로 승부…“정부 대책 필요” 지적도
제작사들은 드라마 제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대중들에 익숙한 웹툰·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제작을 늘리는 한편, TV·OTT 편성을 확정한 후에 제작에 돌입하는 등 ‘리스크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과감하게 신인 기용을 확대하는 등 ‘가성비 드라마’ 제작을 늘리는 모습도 포착된다. 출연료가 높은 스타 배우보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전격 캐스팅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배우 뿐 아니라, 작가, 감독 등에 있어서도 파격적으로 신인을 기용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MBC는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드라마 극본 공모전을 연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검은태양’, ‘꼰대인턴’ 등이 공모전에 당선돼 제작됐다. JTBC와 SLL도 신인작가 극본 공모를 통해 ‘사랑의 이해’ 이서현·이현정 작가,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손호영 작가 등을 발굴했다. CJ ENM은 신인 창작자 발굴·육성을 위한 ‘오펜’을 진행 중이다. ‘갯마을 차차차’ 신하은 작가, ‘슈룹’ 박바라 작가 등이 오펜 출신이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드라마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소통해 타개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