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올린 데 대해 “외교정책상의 문제가 아니다”고 17일 밝혔다.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SCL에 포함했다고 확인한 지난 15일 이후 한국 내 핵무장론 확산, 비상계엄 선포 및 대통령 탄핵소추 등 그 이유를 놓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지만 결국은 다른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SCL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구소 보안 문제가 이유”
외교부는 이날 출입기자단에 보낸 공지를 통해 “미국 측을 접촉한 결과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은 이 리스트에 등재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측은 외교부에 한국 연구원들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보안 규정을 어긴 사례가 적발돼 명단에 포함됐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도 “미 국무부에 (민감국가 관련 사항을) 물어봤을 때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고, 미 에너지부에서 접촉 가능한 고위직은 대부분 사안을 모르고 있었다”며 “미국 에너지부 고위직이 아니라 실무진이 SCL에 한국을 추가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SCL에 추가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15일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그 이유나 배경과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 역시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외교가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 내 핵 무장론이 계속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한국의 비상계엄 및 탄핵 정국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의 분쟁이 단초가 됐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등장했다.
한국 정치권은 이를 두고 정치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정을 장악한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여권에서 나오는 핵무장론이 요인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런 정치 및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는 “과거에도 한국이 미 에너지부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됐다가 미측과의 협의를 통해 제외된 선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 회계감사원 보고서 등에 따르면 한국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SCL에 포함됐다가 해제된 적이 있다.
◇민감국가 해제 여부 불투명
미국이 SCL에 한국을 포함한 이유가 기술적 문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해제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당장 미국 측은 아직도 한국 연구진이 어떤 보안 규정을 어겼는지 등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측이 보안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한 연구소가 원자력발전이나 핵무기 관련 연구를 하는 곳이라면 다른 파장이 일 수 있다.
정부는 미국 측과 협의해 한국을 명단에서 제외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다음달 15일 발효까지 시간이 약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열어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해 “관계 기관들이 미국 측에 적극 설명해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권한대행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적극적으로 협의하라”고 주문했다. 안 장관은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하기로 하고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조율 중이다.
이현일/배성수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