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금융, 역할론 부상...산업의 녹색전환 마중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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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공시와 전환금융은 서로 분리된 정책이 아니다. 정보가 없다면 자본은 움직일 수 없고,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산업 전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속가능 공시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로 자리잡고, 이를 통한 전환금융이 실행될 때 전환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 베일 벗은 ESG 공시, 코리아 프리미엄 시동
③ 지속가능성 공시와 생산적 금융의 새로운 역할

지난 2025년 한경ESG 경영혁신포럼에서 최현창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위기대응단 부단장(사진 맨 왼쪽)이 발제자로 나서 전환금융을 포함한 K-GX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지난 2025년 한경ESG 경영혁신포럼에서 최현창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위기대응단 부단장(사진 맨 왼쪽)이 발제자로 나서 전환금융을 포함한 K-GX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 세계 경제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금융의 역할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금융은 생산성과 혁신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 배분 기준은 이제 “얼마나 생산하는가”를 넘어 “어떻게 생산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업으로 자본이 이동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날 생산적 금융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은 정보다. 자본시장은 정보에 기반해 움직인다. 투자자는 기업이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어떤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지,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자본을 배분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이러한 정보에 ‘탄소’와 ‘전환 전략’이 추가된다. 지속가능 공시는 바로 이러한 정보를 시장에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다.

최근 금융당국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확정하고 단계적 의무화 계획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을 시작으로 공시가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또한 기업 가치사슬 전반의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 3 공시는 기업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 일정 기간 유예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초기에는 거래소 공시 형태로 운영되다가 제도가 정착되면 자본시장법에 따른 법정 공시로 전환될 계획이다.

공시 의무보다도 데이터 문제에 주목해야

기업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공시 의무 자체보다 데이터 문제다. ESG 공시는 재무제표처럼 이미 정리된 숫자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배출량, 감축 경로, 공급망 배출 등 다양한 비재무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특히 스코프 3 배출량은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업 혼자서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수백 개의 협력업체와 글로벌 공급망을 가진 기업일수록 데이터 확보의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공시 자체보다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데이터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시 의무가 확대되면 기업은 규제 리스크와 비용 부담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지속가능 공시의 핵심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신뢰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MRV, 즉 측정(Measurement), 보고(Reporting), 검증(Verification) 체계가 필수적이다. 기업마다 다른 방식으로 배출량을 계산하고 추정한다면 투자자는 그 정보를 신뢰하기 어렵다. 반대로 신뢰 가능한 MRV 체계가 구축된다면 자본시장은 기업의 기후 리스크를 보다 정확하게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부상하는 것이 전환금융이다. 전환금융은 철강·시멘트·화학과 같은 고탄소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금융을 의미한다. 이는 재생에너지나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녹색금융과는 성격이 다르다. 녹색금융이 이미 친환경적인 산업을 지원한다면 전환금융은 아직 녹색이 아닌 산업이 녹색으로 이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전환금융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산업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전환채권(Transition bond)’과 산업별 탈탄소 로드맵을 결합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철강·화학·발전 등 주요 고탄소 산업에 대해 장기적인 감축 경로를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기관이 전환투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접근은 고탄소 산업을 단순히 배제하기보다 현실적인 전환 경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환금융의 핵심은 고탄소 산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징검다리’를 제공하는 데 있다. 산업마다 기술 성숙도와 감축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속도의 탈탄소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철강이나 시멘트 산업은 탈탄소 기술의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부 산업은 비교적 빠른 전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전환금융은 과학 기반 감축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현실적인 전환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금융, 전환의 마중물 될까

정부는 이러한 산업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향후 약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 공급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이 초기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 자본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산업 전반의 녹색전환을 촉진하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지속가능 공시와 전환금융은 서로 분리된 정책이 아니다. 공시가 기업의 기후 리스크와 전환 전략을 시장에 보여주는 창이라면, 전환금융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본이 이동하는 통로다. 정보가 없다면 자본은 움직일 수 없고,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산업 전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산적 금융의 의미 역시 여기에 있다. 생산적 금융은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이 아니라 산업의 방향을 바꾸는 금융이다. 탄소 집약적인 산업 구조에서 저탄소 산업 구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금융은 중요한 촉매 역할을 수행한다. 지속가능 공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전환금융이 서로 연결될 때 자본시장은 녹색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석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교수, ASEAN+3 디지털채권시장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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