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설치된 오상민의 작품 ‘빛 자연과 선의 틈에서’. 작가 및 경기도 제공.
꿀벌, 두루미, 희귀한 새들과 자생 넝쿨식물까지.
반세기 넘게 사람의 발길이 끊진 비무장지대(DMZ)는 전쟁과 분단의 상흔이 가득하다. 하지만 생물들 입장에선 야생에서 다양성이 공존하는 땅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DMZ를 바라본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은 현대미술 전시 ‘DMZ OPEN 전시: 언두 디엠지(UNDO DMZ)’가 11일 경기 파주시 DMZ 일대에서 개막했다.
통일촌 수매창고에 전시된 양혜규의 ‘디엠지 비행’(가운데)과 ‘가마벌 신당’(왼쪽), ‘등대벌 이중맨션’(오른쪽). 작가 및 경기도 제공.
전시는 작가 10명의 작품 26점을 민통선 내 통일촌 마을과 미군 기지 내 볼링장을 전시장으로 바꾼 ‘갤러리 그리브스’,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선보인다. 통일촌 마을에선 쌀을 보관하는 수매창고도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강원도 철원의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꿀벌 ‘봉희’가 겪는 사건을 담은 양혜규 작가의 영상 ‘황색 춤’과 그래픽 작업 ‘디엠지 비행’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디엠지 비행’에선 로봇 벌과 철조망, 망원경 같은 오브제가 등장한다. 이는 작가가 DMZ 이면에 흐르는 인간과 자연의 에너지 흐름을 상상해 조합했다고 한다.수매창고 밖으로 나오면 DMZ 문화예술 공간 ‘통’에서 DMZ에서 수집한 소리를 이용한 김준의 설치 작품, 2019년부터 DMZ 파주권역의 동∙식물 잔해를 수집하고 액침 표본으로 보존한 박준식의 ‘비옥한 땅에 핀 꽃’을 볼 수 있다.
갤러리 그리브스에 전시된 래코드의 ‘전장에서 일상으로 군용 소재’. 작가 및 경기도 제공.
갤러리 그리브스에서는 버려지는 텐트, 군복, 낙하산을 이용해 옷으로 재탄생시킨 래코드의 ‘전장에서 일상으로: 군용 소재’가 중앙에 설치됐다. 그 뒤편으로 방탄복에 사용되는 아라미드 원사를 재활용해서 버섯 형태로 만든 오상민 작가의 ‘쏘일 투 쏘울’이 보인다. ‘학의 눈밭’은 홍영인 작가가 DMZ의 두루미를 관찰하고 만든 작품으로 하얀 모래 위에 여덟 쌍의 두루미 신발을 만들어 올려놓았다. 두루미를 익명의 집단이 아닌 각기 다른 신발을 신는 개별적인 존재로 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통일촌 수매창고에 전시된 원성원의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 작가 및 경기도 제공.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는 지장보살이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로 환생해 원한의 고리를 끊어 냈다는 신라시대 설화를 담은 원성원 작가의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 DMZ 자생 식물의 형태를 본떠 금속 실로 자수를 놓아서 표현한 오상민의 ‘빛: 자연과 선의 틈에서’ 등이 야외 공간에 큰 규모로 설치됐다.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70여 년간 긴장과 전쟁의 잔재로 남아있던 비무장지대가 자연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예술가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도”라며 “DMZ의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지형을 열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11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