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으면 헛일"…마침내 찾아온 동양의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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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타나아미 케이이치의 개인전 ‘아임 디 오리진’. 전시장 벽과 천장을 생전 작가가 그린 팝아트 벽화로 가득 채웠다.  대림미술관 제공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타나아미 케이이치의 개인전 ‘아임 디 오리진’. 전시장 벽과 천장을 생전 작가가 그린 팝아트 벽화로 가득 채웠다. 대림미술관 제공

“나에게 대담하고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면 해봐야 의미가 없다.”

지난 8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작가 타나아미 케이이치가 생전 신념처럼 여긴 문장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길을 택했고 그래서 ‘동양의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걸그룹 뉴진스의 앨범 표지와 콘셉트를 디자인한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도 따지고 보면 게이이치를 뒤따른 작가다.

타나아미 케이이치의 미술 세계가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개인전 ‘아임 디 오리진’에서 펼쳐졌다. 타나아미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이 한국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고하기 직전까지 60년간 제작한 작품 가운데 700여 점을 선보인다. 대림미술관이 개관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진 전시다.

타나아미는 섬유 도매를 하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 정통 미술보다 디자인에 더 관심이 많았고 그래픽 디자인학을 전공한 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록 밴드였다. 밴드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몽키즈가 타나아미에게 앨범 표지 디자인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타나아미는 1960년대 미국에서 앤디 워홀을 비롯한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 뒤 큰 영감을 받았다. 순수 예술로 여겨지던 회화와 디자인, 애니메이션, 포스터, 만화와 광고 등 상업예술이 만나 탄생하는 색다른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한 회화, 조각, 설치작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란한 색감과 경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엔 그의 고통과 슬픈 기억이 숨어 있다. 그는 유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가족과 산 위로 피란을 떠나던 모습, 1980년대 초반 결핵으로 입원했을 당시 생사의 경계에서 본 환각을 팝아트로 풀어냈다.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 속 트라우마를 화려한 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조각과 회화부터 애니메이션, 영상까지 눈을 사로잡는 타나아미의 팝아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타나는 1층 공간엔 압도적 크기를 자랑하는 설치작 ‘백 개의 다리’가 관객을 맞이한다. 세속과 신성함 사이를 잇는 다리를 상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한 층 위로 올라가면 그가 서양 팝아트와 하위문화에 영향을 크게 받았을 당시 제작한 작업들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는 그가 그린 영화 포스터, 콜라주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1967년 제작된 ‘노 모어 워’ 시리즈다. 천에 그림을 그려 넣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했는데, 미국 만화와 팝아트에서 얻은 영감을 집대성한 작업이다. 1960~1970년대 미국 대중문화와 관련된 이미지를 콜라주처럼 모아놓은 ‘콜라주 북’ 시리즈도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다.

그는 스스로를 작가 대신 ‘이미지 디렉터’라고 칭할 만큼 여러 장르에 손을 뻗었다. 아디다스, 유니클로 등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하며 다양한 제품을 탄생시켰다. 본 전시관에서 몇 걸음 벗어나면 나타나는 별관 ‘미술관 옆집’에서는 그가 펼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선보인다. 스트리트 브랜드, 바비 등 다양한 브랜드 및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제작한 제품이 놓였다. 그가 작업 인생 내내 이어 온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내년 6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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