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여권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자본시장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의무 소각 기한이 각기 다른 법안이 차례로 발의되면서 의무 소각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영계 등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7월 임시국회가 아닌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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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자사주 의무 소각 기한 3년”…추가 법안 발의
17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3년 이내 이사회 결의를 통해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예외적으로 보유할 경우 목적과 기간, 처분 계획 등을 공시하도록 했다.
이번 개정안은 앞서 김남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자사주 의무 소각 기한에 차이를 보인다. 김남근 의원은 지난 9일 관련 법안을 최초 발의하면서 자사주 의무 소각 기한을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로 규정했다. 이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를 취득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규정한 법안을 지난 14일 발의했다.
김현정 의원 안은 자사주 소각 시 의사회 의결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남근 의원 안은 자사주 소각 시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했으나 이보다 기업의 자율이 늘어난 셈이다. 주총 승인을 거칠 경우 ‘3%룰’(대주주·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이 적용돼 경영진의 입김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존 대비 규제 수위를 낮춘 발의안이 새롭게 나오면서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개인 투자자 등을 중심으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기업과 자사주를 맞교환하거나 제3자에 매각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자사주 소각 의무기한을 3년으로 길게 두는 방안은 건전하지 못하다”며 “자사주가 지배주주 우호 지분 역할을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주주 환원과 주가 리레이팅(재평가), 증시 레벨업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인 만큼 원칙을 강하게 세우길 바란다”며 “소각 예외조항 역시 깐깐하게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3년은 길다” vs “1년은 빨라”…시장 의견 팽팽
다만 자본시장 내에서도 자사주 소각 의무 기한을 3년으로 유연화해 제도의 연착륙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자사주가 외국 투기자본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자사주 처분에 따른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우려, 제3자 대상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자사수 소각 의무화 방향은 맞다”면서도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하는 데는 투자 목적, 주가 부양용, 인수합병(M&A) 대비 등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무조건 1년 이내 또는 6개월 이내 소각하라는 건 너무 급진적이며 주가 폭락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취득한 자사주에 대해서는 취득 목적 등을 정확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해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향이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민주당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경제계 의견 수렴을 거친 뒤 9월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민주당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규제 수위를 낮춘 법안을 추가로 내놓고 경제계의 요구인 배임죄 완화 등에 시동을 건 점은 상법 개정 이후의 속도 조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현정 의원은 “자사주 취득이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면서도 “자사주 소각에 일정한 예외를 둬 기업의 유연한 경영전략 수립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소각 기한을 3년으로 설정한 데 대해서는 “불필요한 장기 보유를 차단하면서도 기업이 유연하게 경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