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건설회사는 고속도로 토공 공사 일부를 도급받았고 그중 교량 건설 현장의 철근 운반 작업을 위해 지게차를 임차하였다. 지게차를 임차하면서 지게차 소유주로부터 운전기사도 함께 제공받는 것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지게차 운전기사는 A건설회사 소속 근로자의 수신호에 따라 지게차를 운전하여 철근 운반 작업을 수행하였다. 운전기사는 지게차에 철근 3묶음을 싣고 이동하여 하역장소에서 지게발을 내리던 중, 신호수가 철근 고임목을 옮기기 위해 지게발 아래로 접근하자 지게발의 작동을 멈추었으나 철근 묶음이 신호수의 머리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신호수는 경추손상 등의 상해를 입었고,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보상금으로 약 6억 3600만원의 산재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지게차 소유주와 운전기사를 상대로 운전기사의 운전과실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운전기사는 실제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으로서, 소유주는 그 사용자로서 연대하여 구상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구상금을 청구하였다.
이와 관련된 법률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7조 제1항은 “공단은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에는 그 급여액의 한도 안에서 급여를 받은 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다. 다만, 보험가입자인 2 이상의 사업주가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사업을 분할하여 각각 행하다가 그 중 사업주를 달리하는 근로자의 행위로 재해가 발생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피고들(지게차 소유주와 운전기사)이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는데 지게차 소유주가 순수하게 지게차를 ‘임대’하였을 뿐 ‘도급’을 받은 것도 아닌 이상 ‘하나의 사업을 분할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단서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지게차 소유주와 운전기사는 자신들은 ‘제3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구상금 지급의무가 없다고 다투었다.
1심과 2심 법원은 공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 지게차 소유주와 운전기사가 ‘제3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다만 신호수도 스스로 안전하게 지게차 운전을 유도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먼저 정지나 후퇴를 위한 수신호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고임목을 이동하기 위하여 철근이 실린 지게발 밑으로 가까이 접근하여 부주의하게 작업하다가 이 사건 사고를 당한 사실을 인정하여, 지게차 소유주와 운전기사의 책임을 50%로 제한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기존 대법원의 법리에 충실한 해석이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의 의미에 관하여,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고 해석하여 왔다. 대법원은 동일한 사업주에게 고용된 동료 근로자 뿐만 아니라 하수급인, 하수급인에게 고용된 근로자가 산재 사고를 일으킨 사건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산재보험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만약 동료 근로자의 과실로 산재가 발생하였는데 그 동료 근로자에게 공단이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고용한 사용자가 가해자에 대하여도 산재보험료를 납부한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과 같이 건설기계 임대차 및 운전노무 제공 계약이 체결된 사안에서는, 건설기계 임대인의 근로자가 건설기계를 운전한 경우뿐만 아니라 건설기계 임대인이 직접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노무를 제공한 경우에도 공단의 대위권 행사를 긍정하였다. 이 사건의 1, 2심은 이러한 판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렇게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것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는지를 산재보험료의 부담관계, 특히 업무상 재해의 가해자에 대한 산재보험료 납부의무를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문제로 파악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원수급인(A건설회사)의 근로자이거나 도급 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산재보험법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는 사업주인 원수급인을 매개로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건설기계 임대인은 원수급인의 근로자가 아니고 하수급인에도 해당하지 않아 보험가입자이자 사업주인 원수급인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으므로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실무상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위와 같은 오랜 법리를 폐기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대법원 2026. 1. 22. 선고 2022다214040 전원합의체판결).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에 따른 대위권의 행사 범위는 보험료 부담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 또는 노무제공자들이 동일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공동의 위험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업 또는 사업장에 내재하는 동일한 ‘위험’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의 범위를 파악하는 ‘위험공유설’을 채택하였다.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가해자와 그 사용자는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상대방인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로운 법리에 따르면, 사고 당시 가해자인 지게차 운전기사는 A건설회사의 지휘·명령 아래 신호수와 공동으로 작업함으로써 사업장에 내재하는 위험을 공유하며 업무를 수행하였고, 그 위험이 현실화되어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들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공단은 지게차 소유자와 운전기사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
다수의견의 근저에는 근로자파견, 비건설업종에서의 건설기계 임대차 등 보다 폭넓은 사안에서까지도 공단의 대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에 대한 산재보험료까지도 부담시킬 것인가 등 수많은 후속 쟁점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하는 판례 경향과 결합하여 생각해 보면 이 전합판결이 어느 정도로 파급력을 낳을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은행이 아니므로 새로운 판례에 따라 추가로 부담하는 산재보험금을 어디에선가는 걷어야 한다.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산재보험료의 부담 범위에 관한 향후 입법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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