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를 둘러싼 오래된 질문
어떤 법률 개념의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신호다. 정부와 여당이 올해 노동절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이른바 ‘일법 패키지’, 즉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은 바로 그런 신호다. 근로자와 똑같이 일하면서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가 약 144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 정부의 문제의식이며, 이 패키지가 약 860만~870만 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를 제도권으로 포괄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증책임의 대전환
일법 패키지의 핵심은 근로자 추정제다. 2025년 12월 24일 발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김주영 의원 대표발의)은 근로기준법과 관련한 분쟁 해결에서 노무제공자를 근로자로 추정하도록 하면서, 노무수령자가 이를 반증할 때 그 추정이 번복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였다. 현행 제도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종사자 등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려면 대법원 판단 기준에 따른 종속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이 구조가 뒤집히는 것이다.
정부는 정보 비대칭의 해소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근로자는 지휘·감독 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지만, 사용자는 출퇴근 기록, 업무 지시 체계, 계약 구조 등 핵심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단순해 보이는 전환이 실무에서 만들어 낼 파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퇴직금 지급의무만이 아닌 근로기준법 전체가 적용되어 형사처벌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입증책임의 전환이 곧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동시에 뒤흔드는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기업 전반의 법률 리스크 관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두 방향의 불만
흥미로운 것은, 이 패키지를 향한 비판이 경영계와 노동계 양쪽에서 동시에 제기된다는 점이다. 경영계는 사업주 부담의 과도한 증가와 함께, 멀쩡하게 근로계약을 맺던 근로자들마저 도급·위탁·프리랜서 계약으로 전환하려는 역설적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런데 노동계의 반응 역시 역설적이다. 근로자 정의 규정(근로기준법 제2조)은 그대로인 채 추정 규정만 신설되므로, 실질적 판단 기준은 결국 기존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따르게 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이 바뀌거나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한쪽은 ‘너무 많이 바뀐다’고 하고, 다른 쪽은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이 양극단의 우려가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입법이 아직 충분히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새 지도를 그리려면 새 언어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자성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경우를 모두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안전·건강권, 공정한 계약, 적정 보수 등 권리를 명시한다. ‘근로자’라는 이분법적 개념 틀을 우회하여 그 바깥에 있는 수백만 명에게 별도의 보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시도다. 방향성 면에서는 시대의 요청에 부합한다. AI와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고용의 형태는 이미 근로기준법이 상정한 모델에서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본법이 ‘모법(母法)’으로서의 선언적 성격에 머무를 경우, 정작 현장에서는 공허한 조문으로 남을 가능성이다. 실제 권리 보장의 범위와 수준은 근로기준법 등 개별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적용에 따라 구현될 수밖에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 이유
근로자 추정제 도입이 가져올 가장 현실적인 과제는, 추정을 뒤집기 위한 ‘반증 관리’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이다. 계약서 한 장을 정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노무제공 구조 전반을 법적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짜 3.3 계약’처럼 명백히 탈법적인 관행은 이미 법의 교정 대상이었다. 문제는 그 경계선에 있는 수많은 사례들이다. 이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법률과 판례를 통해 축적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발생하는 분쟁의 비용은 결국 노사 모두가 부담하게 된다.
일법 패키지는 ‘근로자’라는 낡은 지도를 새로 그리려는 시도다. 그러나 새 지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그것을 그리는 언어와 기준이 먼저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입법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입법의 정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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