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튼브링크 前미국 동아태차관보
한국의 ‘적극적 대미협상’ 태도 조언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25% 상호관세가 8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협상 시한은 불과 열흘 남짓 남았다. 한미는 통상·안보 패키지딜을 시도한다는 데 원칙적 합의는 했으나 각론에선 이견이 크다.
이같은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방한 중이던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사진)를 지난 18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주베트남 대사로 일했던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현지에서 수행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차관보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한·미·일 협력의 기준을 세운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성사에 기여했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글로벌 전략·비즈니스 컨설팅사 ‘디 아시아 그룹(TAG)’에서 활동하고 있다.
크리튼브링크 전 차관보는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국방비 공세에 대해 “미국의 목표는 보다 공정한 통상·안보 관계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1기 당시 내부자로서 (미국과)효과적으로 협력한 국가의 공통점을 알 수 있었다”며 “그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와 우려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태도를 보였고, 실제로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크리튼브링크 전 차관보는 한국이 최근 대미 해외직접투자(FDI) 1위 국가이며 양국 사이에 반도체, 자동차 등과 관련한 공급망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먼저 거론했다. 그는 “한국이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해 기여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며 “최근 한국이 미국 조선산업에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관여’와 ‘기여’의 연장선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리튼브링크 전 차관보는 “대담하고 직설적으로 미국의 목표에 기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하되 한국의 우려를 넌지시 강조해야 한다”면서 “그런 모습이 집중적으로 협상하려는 태도로 비춰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생산적이고 건설적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관세)조치는 자연스럽게 연기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협상이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텐데, 이를 위한 프레임워크(기본 틀) 합의는 이번 기회에 마련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8월 1일 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만큼 최소한 이달 내에 큰 틀의 합의는 이뤄놓고 ‘연장전’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협상을 계속 늦추는 편이 낫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한국이 협상의 속도와 강도를 계속 높이는 편이 이득을 얻어내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논리다. 한국 정부의 주된 의견은 ‘국익에 기반해 협상 장기화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와는 다소 결이 다른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 유대를 얼마나 쌓느냐가 한미 정상회담 성공을 좌우할 요인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크리튼브링크 전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딜메이커(deal maker)’로 여긴다”며 “그는 큰 거래를 위해 파트너와 강력한 사적인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고, 정치적 스펙트럼 역시 다르지만, 오랜 기간 대중의 관심을 받아 온 중요한 리더이며 여러 역경을 극복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정치적인 비전, 나아가 취미나 관심사에서도 부지런히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이 이 대통령의 참모라면 ‘사적 유대감 리스트’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정책 기조인 ‘동맹 현대화’는 거스르기 힘든 기류라는 진단도 내놨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경제, 기술, 문화적으로 엄연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된 한국이 동맹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동맹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 관계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다”면서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공동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함께 ‘현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미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함께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크리튼브링크 전 차관보는 미북 대화가 재개되면 전술핵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 한국의 주요 관심사항이 협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미국이 한반도에 대규모 병력을 전방 배치하고 있는 만큼 SRBM을 비롯한 북한의 모든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응하는 것이 미국의 핵심 이익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미북 대화가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 재개에 열린 입장이지만 러시아와 협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이 당장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내내 우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북한은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미북 대화의 성사 여부는 결국 북한 태도에 달린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이 하나의 외교적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과 신중하고 조율된 대화를 진행한다면 이는 미국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크리튼브링크 전 차관보는 오는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는 데 따른 이점이 많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며 “이는 한국뿐 아니라 나아가 역내 동맹 강화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