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 로봇장의사·영생 택한 인간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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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 로봇장의사·영생 택한 인간의 질문

입력 : 2026.04.20 17:45

천선란 소설 무대화 '뼈의 기록'
죽음 모르는 로봇의 시선 통해
인간의 슬픔과 아름다움 응시
환생·영생 소재 '모어 라이프'
뇌 데이터 인공신체이식 통해
인간 정체성·윤리적 경계 탐색

연극 '뼈의 기록' 공연 사진.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 역할을 맡은 배우 강기둥과 모미역의 장운선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예술의전당·할리퀸크리에이션즈

연극 '뼈의 기록' 공연 사진.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 역할을 맡은 배우 강기둥과 모미역의 장운선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예술의전당·할리퀸크리에이션즈

"SF는 예언이 아니라 묘사다."

SF 소설가 어슐러 K 르 귄은 1969년작 '어둠의 왼손' 서문에서 공상과학의 본질은 미래를 내다보는 데 있지 않다고 했다. 미래라는 가상의 무대 위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건 결국 지금, 여기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머나먼 미래 속 비인간 존재를 경유해 현재의 인간성을 되묻는 연극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뼈의 기록'과 '모어 라이프'다. 두 작품은 전통적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존재를 통해 무엇이 인간인지, 그 경계와 본질에 의문을 던진다. 두 작품 모두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 무대 위에 놓인 배우의 신체만으로 관객 저마다의 내일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연극 '뼈의 기록'은 소설가 천선란의 '로봇 3부작' 중 한 편인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지하 영안실에서 시신을 염하는 안드로이드 장의사 로비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고독사한 노인, 스스로 생을 마감한 무용수, 불의의 사고로 일찍 사망한 소년까지 다양한 시신을 감정 없이 마주하며, 뼈에 남은 흔적과 상처를 통해 그들 각자의 고유한 기록을 복원해 간다. 인간과는 다른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그는 뼈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뼈와 같습니다. 뼈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르며,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로비스에게 인간의 죽음은 여전히 불가해한 관념이었다. 그러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자주 대화를 나눴던 모미의 장례를 치르며 마침내 죽음이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다른, 뼈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작품은 연극으로 만들어지면서 시공간이 2085년 폐행성 지구로 구체화되는 등 서사를 보강했다. 관 모양을 본뜬 차가운 영안실을 배경으로, 감정이 없는 로봇과 말을 하지 못하는 모미가 수어로 소통하는 무대는 적막함으로 가득하다. 미니멀한 조명과 영상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게 하고, 비어 있는 무대는 죽음과 소멸에 대한 사유의 자리를 남긴다.

지난 8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장한새 연출은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 점이 위로를 준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천선란 작가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 냉정해질 수 없지만,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로봇이라면 어떨까 생각하며 쓴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오는 5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모어라이프' 콘셉트 이미지. 죽음 이후 재구성된 브리짓 역의 이진경 배우. 두산아트센터

'모어라이프' 콘셉트 이미지. 죽음 이후 재구성된 브리짓 역의 이진경 배우. 두산아트센터

'뼈의 기록'이 죽음을 모르는 로봇의 눈으로 삶의 의미를 더듬는다면, '모어 라이프'는 죽음을 건너뛴 인간의 몸으로 삶의 경계를 묻는다. 오는 29일부터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초연되는 연극 '모어 라이프(More Life)'는 '두산인문극장 2026: 신분류학'의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영국 극단 칸딘스키 시어터 컴퍼니의 로런 무니와 제임스 예이트먼이 쓴 희곡으로, 지난해 2월 영국 로열 코트 시어터에서 초연됐다. 가디언은 이 작품에 대해 "기술에 관한 놀라울 만큼 인간적인 연극"이라고 평했다.

2026년 자율주행차 사고로 사망한 브리짓은 50여 년이 흐른 뒤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다. 뇌 데이터를 디지털로 저장해 다른 신체에 이식하는 이른바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현실이 된 세계다. 식사도 수면도 필요 없는 인공 신체지만, 브리짓의 의식은 여전히 인간의 감각과 기억으로 가득하다. 작품은 인공신체의 감각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 인간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이 존재를 여전히 브리짓으로, 인간으로 볼 수 있는지 묻는다.

1막에서는 뇌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격을 복원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50년이 흘렀다는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브리짓의 정체성 혼란이 펼쳐진다. 2막에서 그녀는 바이오 기술과 공동체적 삶이 결합된 근미래 연구단지에 들어가는데, 몸도 죽음도 이미 구시대의 개념이 된 그곳에서 오히려 온전한 인격을 보전한 이상적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초연 연출을 맡은 민새롬은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서사로 다루지 않는다"며 "삶의 연장 앞에서 인간이 마주하게 될 윤리적 딜레마를 관객과 들여다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인간은 왜 영속을 추구하는가 등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원형적 질문을 섬세하게 다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5월 3일에는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와의 관객 대화가 예정돼 있다. 작품은 5월 17일까지.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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