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비인간의 예술적 협응…아니카 이 리움미술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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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억년 전 지구에 출현한 단세포 생물 방산충이 인간보다도 더 거대해졌다.

작가가 지난 10여 년 간 제작한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대표 작품 33점을 통해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한편 근작들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특징들을 살펴본다.

아니카 이는 기술과 생물, 감각을 연결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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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 이 리움미술관 개인전
회화·조각·설치·영상 등 33점
미지의 영역 탐구하며 작업
미생물까지 작품에 참여시켜
기술과 생물, 감각 연결 시도
생성AI 활용 영상 신작 첫선
“죽은 뒤에도 AI로 작업 지속”

방산충을 모티브로 한 아니카 이의 키네틱 아트 연작 ‘무한한 석질’(2023-2024·앞)과 ‘이슬방울 연속체’(2023-2024). 송경은 기자

방산충을 모티브로 한 아니카 이의 키네틱 아트 연작 ‘무한한 석질’(2023-2024·앞)과 ‘이슬방울 연속체’(2023-2024). 송경은 기자

약 5억년 전 지구에 출현한 단세포 생물 방산충이 인간보다도 더 거대해졌다.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달린 이 오브제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몸을 부드럽게 수축·이완하고 촉수를 말았다 편다. 광섬유와 발광다이오드(LED), 모터, 알루미늄, 스테인레스 스틸, 실리콘 등 어느 것 하나 생체로 이뤄진 것 없는 기계지만 스스로(자동으로) 생명 활동을 하는 셈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53)가 방산충을 모티브 삼아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예술 작품으로 구현한 키네틱 아트 ‘무한한 석질’(2023-2024)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플랑크톤을 눈앞의 거대한 기계 생명체로 등장시켜 인공물과 유기체의 경계를 탐구하는 한편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다.

개념미술 작가 아니카 이의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이 오는 12월 29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M2 전시실에서 열린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니카 이가 아시아 지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가 지난 10여 년 간 제작한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대표 작품 33점을 통해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한편 근작들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특징들을 살펴본다.

아니카 이는 기술과 생물, 감각을 연결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균류, 해조류, 기계, 인공지능(AI) 등 비인간을 작업에 참여시켜 인간과 비인간, 인공과 자연의 예술적 협응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개미나 흙 속의 미생물처럼 살아있는 생물을 조력자 삼아 제작한 작업들은 삶과 죽음, 영속성과 부패 등의 실존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아니카 이는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과학자를 비롯해 건축가, 조향사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카 이의 작품은 여러 개념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신작 ‘또 다른 너’(2024)에는 합성생물학이 활용됐다. 원통형 벽면 안쪽을 배지와 대장균으로 채웠는데 해파리, 산호 등 해양생물에서 유래한 형광 단백질이 발현되도록 대장균의 유전자를 조작했다. 전시가 진행될수록 대장균들은 자라면서 서로 다른 색을 발현하고 조화를 이루게 된다. 아니카 이는 유전자 조작 과정을 통해 두 생명체의 유전자를 섞은 새로운 미생물을 만들어 친족과 혈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꽃에 반죽을 입혀 튀겨낸 꽃 튀김을 덕지덕지 붙여 쌓아 올린 ‘절단’, ‘식초 균열’ 등 조각 작품도 부패로 인한 시큼한 냄새로 일반적인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을 비튼다.

아니카 이 ‘또 다른 너’(2024). 합성생물학을 활용해 대장균이 자라면서 저마다 색을 내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작품이다. 원통형 벽면 안쪽에는 배지와 대장균이 채워져 있다. 리움미술관

아니카 이 ‘또 다른 너’(2024). 합성생물학을 활용해 대장균이 자라면서 저마다 색을 내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작품이다. 원통형 벽면 안쪽에는 배지와 대장균이 채워져 있다. 리움미술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아니카 이의 영상 작품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단채널 비디오, 2024). 리움미술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아니카 이의 영상 작품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단채널 비디오, 2024). 리움미술관

아니카 이 작업의 독창성은 만들어진 그대로 영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 변모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작업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하고 있다. 영상 신작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2024)가 그 출발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아니카 이가 제작한 작업물 데이터를 학습한 생성형 AI가 만든 영상으로, 작가가 죽음 이후를 탐구하는 ‘공(空)’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분자, 미생물, 동·식물, 기계에 이르기까지 그간 작가가 활용해온 소재들이 경계 없이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장면을 이룬다. 이를 통해 아니카 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가상 생물로 재해석했다.

궁극적으로 아니카 이는 사후에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쌍둥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니카 이는 “AI에게 나의 창의성을 학습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의 개념은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순수한 의식의 차원을 의미한다. 공 프로젝트는 전시 제목인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과도 맞닿는다. 아니카 이의 작업이 명상적이고 영적인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느 한 세계가 아닌 정말 다양한 세계에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종이 등불처럼 어두운 전시장을 은은하게 밝히는 켈프(해조류의 일종) 조각 연작은 고대 인류가 환태평양 해안과 베링 해협에 형성된 해조류 숲을 따라 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켈프 하이웨이’ 가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조명을 켈프로 감싼 인공 조명이지만 형태적으로 곤충의 고치나 벌집, 인체의 장기를 닮아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동하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거친 바다의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켈프 표면, 조각 안에서 이리 저리 날아다니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기계 곤충, 청각을 자극하는 웅웅 거리는 소리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강조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아니카 이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미국 헌터 칼리지를 졸업한 뒤 미국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영화학을 공부했지만 중퇴했다. 영국 런던에 살면서 프리랜서 패션 스타일리스트,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중 향수, 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30세 때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201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아트 사이언스 앤 테크놀로지 센터(CAST)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과학기술과의 융합 폭을 넓혔다. 2016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휴고 보스 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 홀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지난 4~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에서는 첫날부터 아니카 이의 ‘플라스틱 암석’과 켈프 조각, 방산충 연작 등 주요 조각 작품이 각 2억6800만원대에 잇달아 판매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아니카 이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전경.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들은 방산충을 모티브로 한 키네틱 아트 연작이다. 연합뉴스

아니카 이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전경.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품들은 방산충을 모티브로 한 키네틱 아트 연작이다. 연합뉴스

리움미술관 개인전 오프닝을 위해 최근 방한한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 연합뉴스

리움미술관 개인전 오프닝을 위해 최근 방한한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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