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횡사’ 공천을 ‘혁신 공천’이라 주장
당 대표 시절 당을 사적 도구로 써놓고
대통령 되면 “국민의 도구 되겠다”는 李
행정 권력까지 거머쥐면 누가 견제하나
1호 공약은 AI에 집중 투자해 ‘AI 기본사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AI 교과서도 반대했던 민주당이다. AI 기본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가.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 AI 산업을 육성하려면 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탈원전 정책을 폈던 유럽 국가들이 원전 건설을 늘리는 이유다. 민주당도 어제 “원자력 생태계를 구축하자”고 나섰는데 탈원전 정책을 포기한다는 얘긴지 헷갈린다. 당내 관련 조직에서 에너지 분과위원장을 맡은 이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앞장섰던 인물이고, 이 전 대표도 책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만 언급했을 뿐이다. 지지 세력인 탈원전 단체들이 들고일어나면 한다 했다가 철회한 ‘반도체 부문 주52시간 예외 특례’처럼 되는 것 아닌가.
공약의 신뢰도 문제는 이 전 대표 성정에 대한 불안감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 같다. 그의 새 책에서 “다양성과 비판은 우리 민주당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혁신 공천으로 공천 혁명을 이뤄냈다”는 대목을 읽고 많이 놀랐다.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변호사마저 ‘이재명 일극 체제’에 실망하고 당을 떠나며 “더불어도 없고 민주도 없다”고 했다. ‘혁신 공천’이 아니라 ‘비명횡사’ ‘공천 학살’이었음은 이 전 대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는 지난달 유튜브 방송에 나와 2023년 9월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일을 거론하며 ‘총선에서 다 드러나서 책임을 물었다’고 했다.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을 ‘숙청’했다 인정해 놓고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양성이 민주당 생명이고 혁신 공천이었다 말하나.
지난 대선에서 짙은 색 정장 차림에 “이재명은 합니다”를 외쳤던 그는 이번 대선 출마 영상에선 크림색 스웨터를 입고 나와 “대한 국민의 훌륭한 도구 이재명이 되고 싶다”고 했다. ‘못할 게 없는 사람’이라는 무서운 이미지를 벗고 ‘믿음직한 국민 머슴’ 이미지를 입고 싶었겠지만 ‘도구’라는 단어 선택은 실수였다. 당 대표 시절 ‘민주당이 이재명 로펌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당을 사조직처럼 도구화한 전력을 떠올리게 해서다.비명들이 횡사하는 동안 이 전 대표와 측근들의 사법 리스크를 변호하고 관리했던 율사 5명은 금배지를 달았다. “사실상 변호사비 대납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민주당이 검토하고 추진했던 법안들 중엔 당 대표 사건을 맡은 검찰을 압박하는 ‘검사 법 왜곡죄’, 수천억 원대 배임 혐의로 재판받는 대표를 위한 배임죄 폐지, 대표가 재판받고 있는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없애고 이를 소급 적용하는 법안도 들어 있다. 이 대표 수사하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검사가 5명이다. 민주화 이후 이 정도로 민주주의와 법치를 유린한 당 대표가 또 있었나.
민주당이 야당인 상황에선 말도 안 되는 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최대 야당이 행정 권력까지 거머쥐면 국회가 정부를 감시하기는커녕 대통령 사법 리스크 제거를 위한 법을 만들어도, 대통령 친인척 비리 수사를 못 하게 법을 바꿔도 막을 도리가 없다. 혹여라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경우 야당 의원만으로는 계엄 해제안을 통과시킬 수도 없다.
‘이재명 공포증’에 대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나와 “김대중 대통령도 과격하다, 빨갱이다 많은 걱정들을 했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됐다. 김대중을 보면 이재명이 보인다”고 두둔했다. 동의할 수 없다. 이재명이 두려운 건 이념 문제보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바꾸고 권력을 잔인하게 쓰면서 삼권분립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 같기 때문이다.대통령 이재명은 김대중이 아니라 김대중이 3선 개헌 후 대선에 나선 박정희를 비판하며 언급했던 ‘총통’에 가까울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는 이재명 공포증을 해소해줄 ‘대선날 분권형 개헌안 국민투표 동시 실시’ 제안도 거부했다. 그래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웃고, 이재명이 아니라 국민이 한다 하고, 오늘까진 당을 도구로 썼지만 내일부턴 국민의 도구가 되겠다는 이재명이 여전히 미덥지가 않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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