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혼란 대응 위한 관세사들 조언
관세 인상 더해 통관 절차도 까다로워져
꼼꼼한 서류 제출 준비는 ‘필수’
HS코드 분류 바꾸는 건 ‘독’
오히려 ‘정확한 품목 분류’ 강조
기업은 ‘원산지 기준’ 유의해야
원재료 中 비중 높으면 관세율 급등할수도
미국의 25% 상호관세 부과가 실현될 경우 한국 수출기업들이 막대한 관세 부담과 행정절차 부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HS코드 변경 등 무리한 대응보다는 원산지 기준과 품목 분류를 철저히 준비하고, 장기적으로 공급망 재설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고 없는 관세 폭탄…통관도 까다로워졌다
관세 전문가들은 현재 기업들이 맞닥뜨린 관세 관련 어려움으로 ‘예고 없는 비용 폭탄’, ‘통관 서류 요구 제출 증가’ 등을 꼽았다. 신민호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한국관세사회 서울지회장)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외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하는 것은 사실상 제품 가격의 30~40%에 해당하는 추가 비용이 된다”며 “수출상품의 원가구조를 완전히 재설계하지 않으면 수출을 포기해야할 정도의 충격이라고 (기업들은) 토로한다”고 말했다.
특히 품목 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업계에 어려움이 집중되고 있다. 최수혁 정인합동관세사무소 대표 관세사(한국관세사회 부산세관 공익관세사)는 “품목 관세가 적용된 철강(50%), 자동차 부품(25%) 등에서 관세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구리 관련 제품 수출 역시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관세율로 인한 부담 뿐만 아니라 늘어난 통관 서류 요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 관세사에 따르면 최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기존 HS코드가 관세율에 맞지 않다’며 재분류 요청이나 세부 원산지 서류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환적이나 우회수출 의혹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제3국 경유 여부’를 확인하는 추가 서류를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지난 4월 이후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일반 10% 보충관세가 부과됐는데, 이를 누락하는 경우 미국 수입통관 자체가 지연되거나 거부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도 신 관세사는 설명했다.
무리한 HS코드 변경은 ‘독’
업계에서는 관세 협상의 결과 만큼이나 기업들의 개별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관세 부과를 우회하기 위한 HS코드의 변경은 큰 의미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관세법상 허위신고죄에 해당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최 관세사는 “트럼프 1기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재,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과거 사례를 비춰보면 수출 기업들이 항상 고민하는 것이 ‘HS코드를 다르게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며 “예컨대 ‘파이프인데 배선을 보호하기 위한 ‘덕트’로 HS코드를 바꾸면 안되나‘ 등의 문의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그런 조치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관세사 역시 “HS코드 자체를 다르게 분류하면 관세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번 ‘상호관세’는 품목 구분이 아닌 국가 대상 관세이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기업들이 HS코드나 원산지 분류 등을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두 관세사의 조언이다. 최 관세사는 “한국이나 미국 세관을 통해 품목 분류에 대해 제대로 된 근거를 남기는 것이 좋다”며 “가장 이상적인 건 CBP의 ‘사전심사제도(Advance Ruling)’를 통해 HS코드 분류와 원산지 판정을 받는 것이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한국 관세평가분류원을 통해 품목 분류를 받아서 수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상호 관세 25% 보다 ‘비특혜 원산지 기준’ 대응 시급
업계에서는 최고 25%로 예상되는 상호 관세보다 기업들이 ‘비특혜 원산지 결정 기준’ 적용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특혜 원산지 결정 기준은 ‘특혜 원산지 결정 기준’과 대비되는 원산지 판정 기준이다. 예를 들어 한국 회사가 휴대폰을 만들었는데 부품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해서 제조하는 경우 특혜 원산지결정기준으로 판정하면 한국산, 비특혜 원산지결정기준으로 판정하면 중국산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있다. 특혜 원산지 기준은 한미 FTA에서 적용하는 원산지 기준이고 비특혜 원산지 기준은 미국 CBP에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상호관세는 비특혜 원산지기준으로 판정된 원산지국가에 따라 상이한 상호관세가 부과된다.
최 관세사는 “한국 기업들이 현재 생산하고 있는 제품들의 원재료가 상당 부분 중국 등 수입산 원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비특혜 원산지 기준을 적용했을 때도 해당 제품이 한국산인지 아닌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특혜 원산지 기준의 품목 분류 기준 등이 특혜 원산기 기준에 비해 분명하지 못해 기업들이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관세사에 따르면 비특혜 원산지 기준의 경우 특정 공정에 의해 ‘실질적 변형’이 됐는지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미국의 과거 원산지 판정 사례를 보면 원재료를 세척, 건조, 냉간 인발(금속 소재를 상온에서 금형을 통과시켜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만드는 금속 가공 방법), 열처리까지 했음에도 ‘실질적 변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기업들이 유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장기 해법은 공급망 재설계…“밸류체인 바꿔야”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밸류체인을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 관세사는 “수출 기업들은 상호관세 저세율국으로 원산지들을 전환할 수 있도록 제조 및 공급망 구조를 재정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생산 기지 이전 및 제조공정 변경을 통한 원산지 변경이 단기간 내 실현되기 어렵다면 제품 포트폴리오나 가격 전략을 재구성해 관세 부담을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고부가가치 제품을 위주로 대미 수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