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도 반도체 경기 확장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주목된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열풍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생산능력이 HBM으로 쏠리면서 범용 D램까지 공급이 달리면서 수익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범용 제품까지 확산한 이번 사이클은 과거보다 더 길고 강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은행 "내년 상반기까지 확장세 지속"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경기 확장세 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공급 제약 등을 감안할 때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러한 확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동전쟁이 반도체 경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AI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현 단계에서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유가 상승과 금리 부담, 글로벌 성장세 둔화 우려에도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메모리 공급을 늦추는 움직임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한은은 이번 확장세가 과거 반도체 사이클과 결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2013~2015년 스마트폰 대중화, 2017~2018년 클라우드 확대, 2020~2021년 비대면 수요 증가가 각각 특정 수요처를 중심으로 시장을 끌어올렸다면, 이번에는 AI 인프라 투자가 HBM과 범용 D램 전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 초과 폭이 과거 어느 사이클보다 크고, 지속 기간도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시각이다.
'HBM 쏠림'의 역설…범용 D램 마진 더 뛰었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범용 D램이다. 통상 AI 수혜의 중심인 HBM이 가장 높은 수익성을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메모리 시장에서는 스마트폰·PC·자동차용 범용 D램의 마진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이클의 이례성이 범용 D램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공급 병목 현상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HBM 증산에 생산 역량을 우선 배분하면서 상대적으로 범용 D램 공급 여력이 줄었다. HBM은 공정 난도가 높고 생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만큼 HBM 비중이 높아질수록 범용 D램 수급은 더 빠듯해지는 구조다.
실제 시장에서는 HBM보다 범용 D램의 수익성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현재 비(非) HBM 마진이 HBM 대비 높다"고 밝혔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범용 D램 가격 상승으로 DDR5 마진이 HBM3E를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한은 역시 보고서에서 "생산라인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용 D램 생산라인을 HBM으로 전환함에 따라 범용 D램 수급도 타이트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HBM 중심의 증산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범용 제품의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 가트너, JP모건 등 주요 기관들도 올해 D램 시장이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공급 부족'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봤다.
가격 상승 얼마나 계속되나
가격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트렌드포스는 2분기에도 D램 가격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시그마인텔은 2분기 강세 이후 하반기에는 상승 폭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방향성 자체는 같다. 공급 제약이 이어지는 한 범용 D램 가격의 강세도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의미 있는 공급 증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용인캠퍼스와 마이크론 신규 공장은 2027년 하반기부터, 삼성전자 평택5공장은 2028년부터 생산에 본격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전까지는 공급 부족 기조가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은도 "금년 중 주요 메모리 기업들이 공급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추가적인 생산능력 확장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증설된 생산능력도 HBM에 우선 배분되면서 범용 D램 공급은 충분히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기대 더 커졌다
이 같은 수급 구조는 국내 반도체 기업 실적에도 직접적인 호재다. HBM과 범용 D램이 동시에 강세를 보이는 국면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이라는 역사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오는 23일 발표 예정인 SK하이닉스의 동기 실적 기대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HBM 호황에 가려졌던 범용 D램 가격 상승이 실적 추정치를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증권가는 SK하이닉스 실적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범용 D램과 HBM이 동시에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이례적 국면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인공지능(AI) 기반 투자정보 플랫폼 에픽AI를 활용해 최근 한달간 증권사 리포트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시장 기대치를 10~20% 웃도는 38조~40조원 수준의 서프라이즈가 예상된다. 목표주가는 최고 200만원에 달한다.
에픽AI는 "HBM뿐만 아니라 범용 D램과 낸드의 가격이 최근 들어 대폭 오르면서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며 "서버와 PC 중심의 장기 D램 계약 확산과 모바일 부문의 공격적 수요로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짚었다.
리스크도 있다…중국·AI 효율화는 변수
변수도 남아있다. 한은은 경기 전환 시점이 AI 투자의 수익성 검증 시기, 빅테크의 자금 조달 여건, AI 모델의 기술 효율성 진전, 메모리 기업의 증설 속도, 중국 기업의 추격 속도 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봤다.
특히 한은은 딥시크 등 AI 모델 경량화 흐름을 주목했다. 메모리 절감형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수요를 낮출 수 있다. 반면 AI 활용 저변을 넓혀 전체 수요를 오히려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기술 효율화가 수요 둔화와 시장 확대라는 상반된 효과를 동시에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변수도 무시하기 어렵다. 중국 기업의 D램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질 경우 범용 D램 수급 불균형 완화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이는 결국 가격 상승세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은은 "향후 반도체 경기 확장세의 지속 기간은 특정 시기로 전망되기보다는 매우 유동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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