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유연 美 빅테크 구조조정에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돼 고용 견조
‘유럽병’ 유럽조차 한국보단 유연
“프랑스에선 담배타임 상상도 못해”
기지개 피는 日 기업에 자율성 보장
#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한 기업에서 2년째 근무 중인 A씨는 “미국은 해고가 쉽지만 취업도 쉽다”며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직원은 빠르게 교체되기 때문에 구인 공고가 많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선 가만히 있는다고 연봉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직 등을 통해 몸값을 올려야 한다”며 “HR(인사관리) 팀에서 개인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임금 수준을 정하기 때문에 같은 직급이어도 연봉이 천차만별”이라고 덧붙였다.
주요국 중 미국이 가장 높은 노동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노동시장 경쟁력 순위는 ‘노동 후진국’ 수준이었다. 한국은 141개국 중 해고 비용 116위, 고용·해고 관행 102위, 노사 협력 130위 등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노동경직성은 경제 성장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노동이 2019~2023년 성장률을 0.4%포인트 떨어뜨렸다고 분석했다.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성장동력이 빠르게 식고 있는 한국에서 노동 개혁이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이유다. 미국, 유럽 등 노동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시간당 노동생산성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3년 주요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미국 83.6달러, 독일 83.3달러, 프랑스 81.8달러, 일본 51.3달러, 한국 51.0 달러 순이다.
각국의 노동경쟁력을 비교하면 미국은 단연 독보적이다.
생산성이 평균보다 크게 낮은 직원들조차 쉽게 자르지 못해 신규 채용과 투자에 제약을 얻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해고가 자유롭다.
특히 미국은 ‘파괴적 구조조정’을 통해 최첨단 산업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이 인공지능(AI)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 플랫폼스는 이달에도 전 세계 직원의 약 5%를 감축했다.
앞서 메타는 2022년과 2023년 각각 1만1000명, 1만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한 바 있다. 메타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도 AI 전쟁에 참전하면서 구조조정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미국의 고용 상황은 여전히 견조하다. 지난 2월 15만1000개의 일자리가 추가됐고 실업률은 4.1% 수준이다.
미국의 노동유연성은 코로나19 이후 다른 나라들과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는 과거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미국 경제 성장의 비결’이라는 칼럼에서 미국은 해고된 근로자를 상대로 실업수당을 늘리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고용 시장을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이 떨어지는 유럽의 정부들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해고 최소화를 주문한 것과 정반대 조치였다.
한국은 ‘유럽병’을 앓고 있는 유럽보다 노동 시장이 더 경직적이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한국만큼 ‘가짜노동’을 하기 어렵다.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다 프랑스 파리의 한 컨설팅 기업으로 이직한 B씨는 “유럽이 노조 힘도 강하고 휴가도 기니까 한국보다 근로 환경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점심 시간이 여유로운 한국과 달리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경우가 많고 담배 타임을 한다고 우르르 사라지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중국에 추월당하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고 있는 사이 일본 경제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본이 2018년 70년 만에 노동 대개혁을 하면서 고소득 전문직을 노동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고도(高度)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한 것이 유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포함하는 것조차 난항을 겪고 있다.
계속고용 문제를 두고도 일본 노사는 철저하게 기업 입장을 반영했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일본은 ‘고용 연장’ 개념으로 접근해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한국은 계속고용 문제를 놓고 노동계에서 임금제 개편 없이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리자는 입장을 고집하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케다 히사시 홋카이도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근로자들이 법정 정년 60세를 넘어서도 일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 계약 조건이 악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며 “65세 혹은 그 이상까지도 일하는 건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선 그렇게 보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