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원청이 하청노조의 사용자라는 취지의 정부 기관 판단이 나왔다.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이 사상 처음으로 제도권에서 본격적으로 개시된 셈이다. 동시에 ‘의제별 교섭’이라는 새로운 교섭 방식도 시작됐다. 하지만 제도 도입 속도를 현장이 따라가지 못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한 ‘첫 판정’ 나왔다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공공기관 하청노조 연대인 공공연대노동조합이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4개 공공기관(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에 대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공공연대노조는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4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원청 공공기관들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자 지난 13일 충남지방노동위에 ‘시정신청’을 제기했다. 개정 노조법에 따르면 하청노조가 실질적 지배력(사용자성)이 있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은 7일간 공고해야 한다. 원청이 공고하지 않으면 하청노조가 시정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고가 이뤄지지 않자 각 하청노조는 충남지노위에 이 사건 시정 신청을 냈다. 원청 사용자 측은 개별 근로조건마다 사용자성에 대한 의제별 판단을 해야 하는데, 하청노조 측에서 의제를 명시하지 않아 공고하지 못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충남지노위는 “조사 결과 및 심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용역계약서 등에서 공공기관이 하청 근로자들의 안전관리 및 인력배치 등에서 실질적인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인정했다”며 “원청 공공기관이 하청노조와 대화에 임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시작일 뿐”이라며 “원청교섭이 현장에서 빠르게 확산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법적 다툼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시정명령을 받은 원청이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서다. 지방노동위의 시정명령에 불복하는 원청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거쳐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다. 노동위가 내린 시정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노동위원회는 이행강제금 부과 등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거부하는 원청은 ‘부당노동행위’로 사법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부당노동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인만큼 노동당국 및 하청노조와 원청 간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대혼란’...내일 '포스코'도 사용자성 판단 예정
이번 결정을 시작으로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노동위원회의의 판정은 우후죽순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노동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10일부터 30일까지 접수된 교섭 관련 조정 신청은 총 267건에 달한다. 지난달 30일 기준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에 접수된 사용자성 판단 관련 질의도 총 65건에 달한다.
공공기관이나 국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한 교섭 요구가 폭증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은 민간기업에 비해 하청 관리가 취약해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공기관을 상대로한 원청 교섭 요구와 사용자성 인정 사례가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노동위원회의 준비 부족이 기업의 혼선을 가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방노동위에서는 “업무가 과중에 기한 내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일 “일부 지방노동위에서 판정 기일 내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있다”며 “일부 지방노동위는 자료제출이 부실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노무사 선임 등을 통한 보강을 권고했다”고 지적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사용자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에는 법이 정한 판단 기한이 지나치게 짧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에 노사가 수긍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혼선을 증폭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산업안전, 복지, 직접 고용 등 ‘교섭 의제별’로 판단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노조가 교섭 의제를 제시하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건설사 노무담당자는 “여러 하청노조에서 원청 교섭 요구가 들어왔지만 일부는 의제를 아예 제시하지 않았다”며 “의제를 제시한 노조도 광범위하게 열거해 놓고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과중하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교섭 의제 제시는 법적 의무가 아니다"라며 "의제를 제시하지 않은 노조의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직권조사를 통해 의제를 특정해 주게 된다"고 했다. 결국 사어주가 사용자성 판단을 검토하고 대응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한편 3일에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포스코 하청 노조들의 사용자성에 대한 심판 회의(교섭단위 분리)가 예정돼 있다. 포스코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경우 대기업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첫 사례가 될 것을오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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