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가자 기존전쟁 끝내고
中압박에 나서려던 정책 흔들
푸틴 통화서도 이란 주로 논의
지원 줄어드나 젤렌스키 우려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심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현안 우선순위가 조정되고 있다.
대선 당시만 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조기에 종식하고, 대중(對中) 압박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각 지역 정세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고, 종전을 논의하던 와중에 이스라엘과 이란이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미국 행정부는 외교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수립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가자지구 휴전 협상, 북한과의 대화 물꼬, 중국에 초점을 맞춘 국방력 재배치 같은 굵직한 현안이 줄줄이 뒤로 밀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자신 소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시간가량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이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고 썼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다음주에 논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미국에서 지원받기로 했던 방공 미사일 2만기가 이스라엘에 재배치되면서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AP와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란 샤헤드 드론 격추를 위해 미국이 제공하기로 했던 방공 미사일 2만기가 이스라엘을 위해 재배치됐다”며 “이는 엄청난 타격이었다”고 밝혔다.
이본 재배치는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기 이전에 결정된 일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인해 미국의 군사 지원이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로 옮겨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것(중동 사태)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줄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의 리비에라(Riviera)’로 만들겠다고 밝혔던 가자지구도 후순위로 밀리는 분위기다. 가자지구에서는 위기 상황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4일 뉴욕타임스(NYT)·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인 전날부터 가자지구 구호품 배급소가 운영을 중단했다.
유엔 당국자 출신 한 가자지구 주민은 NYT에 가족을 먹일 식량을 구하는 게 갈수록 악몽처럼 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NYT에 “이제는 다들 이란 얘기만 한다. 가자지구는 뒷전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가디언은 가자지구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국제사회의 외교 추진력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을 계기로 지금 당장은 사라진 상태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려 시도했던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과 북한 간 대화가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 역시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최대 현안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G7 정상회의에서는 △공동체와 세계 보호 △에너지 안보 구축· 디지털 전환 가속화 △미래의 파트너십 확보 등이 의제로 다뤄진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관련 안보 문제나 중국이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희토류 이슈 등도 다뤄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가장 큰 현안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영국 BBC는 “G7 정상들은 이 같은 충돌이 다른 국가들을 개입하게 하고 원유 가격을 급등시키며, 글로벌 안보와 경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