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 및 자사주 소각 의무화 조치 등을 앞두고 웃돈을 얹어 주식을 되사는 공개매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거세지는 주주환원 요구에 부담을 느낀 상장사들이 자발적 상장폐지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비중이 높은 상장사일수록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상폐 목적 공개매수 잇달아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피부미용 의료기기 업체 비올 주가는 10.54% 급등한 1만2380원에 장을 마쳤다. 국내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VIG파트너스가 비올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공개매수를 통해 상장폐지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보통주 1212만5998~3743만8265주를 주당 1만2500원에 매수하기로 했다.
공개매수는 이미 시장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5건에 불과하던 공개매수 공시 건수는 지난해 26건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벌써 10건에 달하고 있다. 이 중 자발적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만 4곳이다. 공개매수를 통해 자진 상장폐지를 신청하려면 자사주를 제외하고 발행주식의 95%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새 정부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추진하자 부담을 느낀 상장사들이 선제적으로 상장폐지를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경영권 강화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선 상장사도 있다. 드림어스컴퍼니는 지난달 22일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자사주 152만 주를 주당 2500원에 공개매수한 뒤 전량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엔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 케이씨텍 최대주주가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케이씨텍 주식을 공개매수했다.
소액주주의 반발을 의식해 무리하게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다가 실패한 사례도 나왔다. 통신 소프트웨어 업체인 텔코웨어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목표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자진 상폐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한 한솔PNS는 종전 제시 가격 대비 매수가를 높였으나 응모 물량이 목표 대비 26.6%에 그쳤다.
기업들이 비상장사 전환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정부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비상장사가 되면 주주환원에서 자유로워지는 데다 공시 의무가 없어 당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장사 지분을 확보한 사모펀드 입장에선 대규모 배당과 감자 등을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도 있다.
◇“자진 상폐 기업 더 늘어날 것”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상장사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공개매수에 나서는 상장기업 대다수의 자사주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다. 비상장사 전환을 위해 공개매수에 나설 경우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자사주 비중이 40%를 훌쩍 웃도는 상장사가 꽤 많았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신영증권(53.10%), 인포바인(51.45%) 일성아이에스(48.75%), 조광피혁(46.57%), 매커스(44.38%), 텔코웨어(44.10%), 부국증권(42.73%) 등이 있다.
개인투자자도 공개매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당장 주가가 뛰는 데다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간 분쟁이 생기면 추가 상승 여력도 높아서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MBK파트너스·영풍과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과정에서 공개매수가를 크게 웃도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비중이 높고 저평가된 기업에서 공개매수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주주환원 요구와 기업 공시 등의 의무가 많을 수밖에 없는 만큼 자진 상폐를 선택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