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폭행… 화장실 간다고 호통도
신고건수 2020년 65건→작년 225건
드러나지 않은 실제 피해 더 많을 듯
고용부, 이동제한 완화 등 도입 계획
필리핀 출신 근로자 B 씨는 관리자의 폭행과 욕설에 시달렸다. 술에 취한 관리자가 오전 1시 기숙사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거나, 기숙사 방에 들어와 B 씨 가슴을 때리기도 했다.
이는 경기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 접수된 외국인 근로자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중 일부다. 최근에는 전남 나주시 벽돌 공장에서 이주노동자가 벽돌 더미에 묶여 지게차로 들어올려지는 영상이 공개돼 이재명 대통령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라며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외국인 근로자 직장 내 괴롭힘, 5년간 3.5배 증가
근로 현장에서는 실제 피해 규모가 신고 건수보다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대부분 사업장 내부 절차를 통해 해결되기 때문에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자가 많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용부 집계에 따르면 5년간 접수된 826건 가운데 개선 지도는 42건, 과태료 12건, 검찰 송치 16건, 취하는 175건으로 나타났다. 법 적용 제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특수고용직 등이 포함된 ‘기타’는 364건, ‘위반 없음’ 조치는 214건이었다. 위반 없음은 괴롭힘이 있었더라도 사용자가 법에서 정한 조사 및 조치 의무를 다했을 경우 내려질 수 있다. 정영섭 이주노동자 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이주노동자 70%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이들 중 많은 수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괴롭힘은 더 많다”며 “폭언과 폭행을 당하다 사업장을 옮기고 싶다고 말하면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사업주가 사업장에 묶어두고 일을 시키지 않아 급여를 받을 수 없게 하는 등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지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 사업장 이동 제한 완화 등 보호 장치 필요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등 국회와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2월 전남 영암군 양돈농장에서 6개월간 일한 네팔인 근로자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농장 기숙사에서 발견됐다. 농장주 C 씨(43)는 네팔 등 외국 국적 근로자들의 뺨과 머리를 수차례 때리거나, 물을 주지 않고 불 꺼진 화장실에 밤새 가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C 씨를 상습폭행,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올해 5월 구속 기소했다. 고용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E-9)를 개편해 근로자들의 사업장 이동 제한을 완화하고, 장기근속 및 3년 단위 체류 연장 방안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업주 동의를 얻거나 폐업, 임금 체불, 폭행 및 성폭행 등 중대 인권침해 발생 시에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근로자 괴롭힘에 대한 실질적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직장문화 개선 및 실질적 보호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며 “특히 외국인 근로자 고충 상담 등을 지원할 통역 지원 인력과 노동 상담을 전담할 고용부 차원의 행정조직 마련 및 확충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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