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확실히 더운 날에 비해 호흡이 깊어집니다. 특히 공기가 맑은 지역에서라면 그 효과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상쾌한 공기가 폐 깊은 곳까지 닿는 느낌이 듭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는데요. 겨울처럼 춥고 건조한 시기에는 냄새를 옮기는 화학물질의 움직임이 느려진다고 합니다. 때문에 안 좋은 냄새 역시 이동을 덜해 코에 닿는 확률이 낮다는 것이죠. 따라서 순수하고 맑은 공기가 좀 더 강렬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냄새를 맡는 행동은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맡고 싶은 냄새 또는 기대하는 냄새가 있을 경우 실제 냄새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각자 인지하는 정도에 따라 고약한 냄새는 더 고약하게, 향긋한 냄새는 더 향긋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겨울철에 맡는 커피향은 더 향긋하게 코를 간질입니다. 여책저책은 커피향이 더욱 짙어지는 겨울철을 맞아 커피에 살고, 커피에 죽는 ‘커생커사(커生커死)족’을 위한 여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커피헌터와 함께하는 세계 커피산지 여행
호세 가와시마 요시아키 지음 |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 펴냄
커피헌터의 그 헌터(hunter), 말 그대로 사냥꾼이다. 살다 살다 커피 사냥꾼은 처음 들어본다. 과연 기이한 직함을 가진 주인공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커피헌터와 함께하는 세계 커피산지 여행’이란 책의 저자 호세 가와시마 요시아키가 바로 그 커피헌터다. 그는 커피 연구가이자 농부, 사회운동가이다.
실제로 그는 국빈을 능가하는 존재감을 지닌다. 탄자니아 과테말라 등 전 세계 커피 수출국에서 일본으로 부임하는 외교관들이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찾는 인물은 총리나 외무대신이 아니다. 약속이나 한 듯 커피헌터에게 가장 먼저 만남을 청한다. 지난 50년간 전 세계 산지를 누비며 산지별 품종 선택 및 지속 가능한 농법을 계몽해 온 그의 지원 여부에 따라 자국 커피 산업의 명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마다가스카르 밀림에 묻혀있던 고유종 마스카로코페아를 재발견해 보전하고, 르완다에서 ‘부르봉 미비리지’ 클론을 배양해 경제 자립을 이끌고,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던 ‘부르봉 포완투’를 찾아내 명맥이 끊겼던 레위니옹섬의 커피 산업을 부활시킨 일은 전 세계 커피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저자와 커피와의 인연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19세이던 때, 당시 커피 선진국이던 엘살바도르로 유학을 떠났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시즈오카에서 커피 로스팅 하우스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커피 재배와 정제과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전 세계 커피산지 탐험을 시작했다. 이후 대형 커피 회사에 취직해 자메이카와 하와이, 인도네시아에서 농원 개발을 주도했다.
탄자니아에 가서는 킬리만자로 산악을 뒤져 ‘진짜 킬리만자로 커피’의 마더트리를 찾아내고, 하와이와 자메이카에 머물며 코나커피와 블루마운틴의 부흥을 이끌었다. 태국 왕실이 주도하는 도이퉁개발프로젝트에 참여해 과거 아편 재배지로 악명 높던 북부지역을 커피산지로 탈바꿈시켰다. 칠순을 목전에 둔 지금도 그는 가난한 커피 재배국 르완다와 말라위, 동티모르 등을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이렇게 커피와의 여정은 50여 년이 훌쩍 넘었고,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와 태평양 건너 북미, 중남미와 카리브해 국가들까지 다녀온 곳의 거리만 해도 지구 82바퀴를 돈 것과 맞먹는다. 책 속에는 저자가 몇 년씩 정주하면서 손수 커피 산업을 일구어낸 나라부터 수십 차례 드나들며 품종 및 재배법을 지도해온 곳, 현실적 여건상 스치듯 들른 생산지까지 36개 커피 국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산자들의 일상을 수백 컷의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윤선해씨도 커피와 깊은 인연이 있다. 윤씨는 번역가이자 커피 관련 일을 하는 기업인으로, 현재 후지로얄코리아 및 와이로 커피(YRO COFFEE) 대표를 맡고 있다. 일본에서 경영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그는 유학 당시 대학 전공보다 커피교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 그동안 ‘도쿄의 맛있는 커피집’ ‘새로운 커피교과서’ 등 일본 커피 문화를 소개하는 책들을 주로 번역해왔다.
도쿄 스페셜티 커피 트립
이한오 지음 | 아이비라인 펴냄
우리나라의 커피전문점 수는 10만 개가 넘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10만729개를 넘어섰다. 전체 매출액도 2022년 기준 15조5000억 원이고, 종사자 역시 27만 명이나 된다. 그야말로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관심도 높다. 스페셜티 커피란 고품질의 커피콩으로 생산한 커피로, 특정 지역의 농장에서 재배한 뒤 풍미, 향, 신선도 등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해 고객을 만난다. 스페셜티 커피협회(SCA)에서 80점 이상의 평가를 얻어야 스페셜티 커피로 부를 수 있다.
스페셜티 커피 강국하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책 ‘도쿄 스페셜티 커피 트립’의 저자 이한오는 “감히 단언컨대 스페셜티 커피 없는 일본 여행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며 “일본이 스페셜티 커피 강국으로서 지닌 매력은 누군가 책을 펴낼 정도로 깊고 진하며 감미롭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우리나라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일본을 방문하고 해외 관광객 순위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 여행을 많이 가는 만큼 스페셜티 커피를 꼭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중 도쿄는 관광지와 먹거리를 겸비한 인기 여행지이자 스페셜티 커피씬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지역이라고 손꼽았다. 예약해야만 방문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커피 마메야 가케루(KOFFEE MAMEYA Kakeru)’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브랜드지만 성공적인 현지화를 통해 일본 국민 브랜드로 거듭난 ‘버브 커피 로스터스(VERVE COFFEE ROASTERS)’까지 다채로운 선택지가 있다.
이번 책 출간에 앞서 지난 2020년 ‘도쿄 스페셜티 커피 라이프’를 펴낸 바 있는 저자는 도쿄의 최신 스페셜티 커피 스폿을 소개한다. 커피 애호가는 물론, 일본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여행객도 단숨에 매료할 공간들이다. 무엇보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없는 진짜 로컬 맛집을 총망라한 것이 의미 있다.
도쿄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다종다양한 콘셉트의 카페가 즐비하다. 오래전부터 카페 문화가 융성한 만큼 무수한 카페가 성업 중이다. 때문에 이를 선별하는 깐깐한 안목이 중요하다. 특히 해외여행 중이라면 시간이 부족한 만큼 정보를 압축해 촘촘히 다녀야 한다. 저자는 오래도록 친분을 쌓아온 일본 바리스타가 새로 연 카페를 찾아가기도 하고, 현지에서 만난 바리스타에게 추천을 받아 즉흥적인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심지어 구글 지도에 등록되지도 않은 카페도 소개한다.
사실 맛내지는 취향이란 것은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개인차가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주관과 객관을 적절하게 유지해야 추천에 따른 평가도 좋기 마련이다. 저자는 왜 그 카페가 좋은지, 왜 그 커피가 특별한지, 왜 그 바리스타를 만난 것이 벅찬 순간인지 설명하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해 글을 풀어냈다. 무언가를 무척 좋아하면 주관적인 심상을 허겁지겁 늘어놓기 십상이다. 그는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자제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독자 스스로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대입할 수 있다.
저자는 “커피를 매개로 소통하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는 국가의 경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일단 도쿄로 향하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고된 일상에 지쳐 있던 감각 세포를 일으켜줄 커피가 있는 카페로 간다면, 도쿄의 바리스타들은 당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진심으로 환대할 것이라면서 말이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