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임영웅이 온답니다"…믿기 힘든 요청에 '술렁'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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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정치인까지 사칭…대한민국 강타한 '노쇼 사기'
노쇼 피해 접수 4배 급증…2021년 45건→2023년 212건
"노쇼 범죄 형사처벌 대상, 최대 징역 5년 1500만원 벌금"

가수 임영웅 /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가수 임영웅 /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오늘 저녁 6시, 임영웅 씨가 감독님들이랑 회식하러 옵니다. 갈빗살 15인분, 꽃등심 15인분, 육사시미 5개, 와인 2병 부탁드려요."

지난 16일, 자영업자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올라온 글에 커뮤니티는 술렁였다. 글쓴이는 "이거 사기일까요?"라는 말과 함께 믿기 힘든 예약 요청을 공개했다. 정체불명의 '물고기뮤직 한지호'라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20명분의 음식 주문이 담겨 있었다.

문자에는 "오늘 저녁 6시, 임영웅 씨가 다른 연예인들과 감독님들을 모시고 식당에 방문한다. 보기 좋은 와인 2병도 준비해 달라. 회식 전에 들러 매장가로 결제하겠다"는 요청도 담겨있었다. 사장 입장에선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한경닷컴이 이날 임영웅 소속사에 실제로 확인 해본 결과, 임영웅의 소속사인 물고기뮤직에는 '한지호'라는 직원이 없었고, 해당 예약 역시 사실무근이었다.

물고기뮤직 측은 즉각 공식 입장을 내고 "최근 임영웅의 이름을 사칭해 예약을 가장한 노쇼 사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며 "회식 예약, 고급 주류 요구, 금전 이체 등은 전부 사칭에 의한 불법 행위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외부에 직접 예약하거나, 물품 구매를 요청하지 않는다. 유사 연락을 받았을 경우 절대 응하지 말고 주의해달라"고 강조했다.

출처='아프니까 사장이다', X

출처='아프니까 사장이다', X

또 다른 자영업자는 배우 조인성과 신세경을 사칭한 노쇼 사기 피해 사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지난 10일 해당 자영업자는 "촬영팀이라며 조인성과 신세경이 식당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전화를 받고, 장어 50인분과 고급 와인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기범은 소속사 명함을 문자로 보내 신뢰를 유도했고, 이튿날 오전에는 약 300만원 규모의 지출 결의서까지 보내왔다. 이후 특정 주류업체에 연락하라며 송금을 유도했다. 이후 연락이 두절 됐고 예약 당일 오기로한 단체손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해당 피해자는 "식당 일이 얼마나 힘든데 이렇게 많은 인원을 예약해 과시하듯 등쳐먹는다"며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이와 유사한 피해 사례와 주의 당부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4명 중 3명 '노쇼' 당했다…자영업자들 피해 속출

기사와 관련 없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관련 없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같은 '노쇼 사기'는 지금 대한민국 외식업계를 뒤흔드는 신종 범죄다. 단순한 노쇼를 넘어 사기와 문서위조, 업무방해까지 얽힌 '소형 보이스피싱'으로 진화 중이다.

배우 강동원, 가수 송가인, 개그맨 이수근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제작진, 심지어 대선 후보 이재명, 김문수 캠프와 군 간부까지 사칭 대상은 점점 더 다양해 지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외식업주 4명 중 3명이 최근 1년 사이 노쇼 피해를 보았다고 답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노쇼 관련 피해구제 건수는 2021년 45건에서 2023년 212건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민주당 경남선대위가 만든 긴급안내문/출처=더불어민주당

민주당 경남선대위가 만든 긴급안내문/출처=더불어민주당

경남 김해·진주의 모텔 3곳에는 최근 '이재명 후보 캠프 홍보실장 강진욱'이라는 명함을 든 남성이 나타났다. 단체 숙박을 예약한 그는 도시락 대금을 선결제해달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업주들이 의심을 품고 민주당 경남도당에 직접 연락해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군 간부 명의의 위조 공문과 공무원증을 이용해 음식점·자판기 납품업체 등에 접근, 선입금을 유도하는 수법으로 군인 사칭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이후 군 사칭 사기 사건만 약 400건, 피해액은 57억원에 달한다.

해당 사기범들은 유명인을 앞세워 단체 예약을 하며 신뢰를 주고 식당 사장을 혹하게 만든다. 이후 "주류는 우리가 쓰는 업체에서 주문해달라"며 "물품을 미리 구매해 달라"며 물품을 사게 만든 뒤, 송금받고 연락을 끊는다. 피해자들은 음식 준비와 인건비, 기회비용까지 삼중의 손실을 본다.

◇“신고해도 잡기 어렵다”…현실은 피해자만 감정 소모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에 경찰청은 최근 공식 블로그를 통해 노쇼 사기 대응법을 안내했다. 대량 예약자는 반드시 신분 확인하고, 공공기관·연예인 사칭이 의심될 땐 관련 기관에 직접 확인해야 한다. 선입금 요구, 특정 업체 배송 요청은 거절하며, 필요시 즉시 경찰에 신고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기 피해자들이 경찰 수사를 의뢰하고 실제 처벌까지 이르는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일선 자영업자들에게는 법적 대응조차 '감정 소모'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마포구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최모(38)씨는 "솔직히 그냥 장난처럼 한 짓일 수도 있는데, 그 장난 때문에 하루 장사 망치는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진다. 신고한다고 당장 잡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더 쓰게 될 것 같다"며 "주변에 노쇼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있는데 사건번호 받고 나서도 별 진척이 없고, CCTV 제출하고 설명하느라 이틀은 그냥 날렸다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부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45)씨도 "요즘은 사기꾼이 더 뻔뻔하다. 나중에 문자로 '신고해도 못 잡는다'고 조롱까지 한다더라"며 "잡히기까지 신경도 쓰이고 시간도 걸리니 장사하면서 이중 스트레스받는 거다.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냥 내가 당하고 마는 게 제일 빠르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푸념했다.

"명함 위조·단체 노쇼는 형사처벌 대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률 전문가들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사칭해 음식점에 대규모 예약을 걸고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노쇼 범죄'가 단순한 장난이 아닌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명함을 위조하거나 조직적으로 사기를 꾸민 정황이 드러날 경우, 업무방해죄뿐 아니라 사문서위조, 손해배상 청구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유진 법무법인 판심 변호사는 "연예인이나 대선후보 등을 사칭해 음식점에 대량 주문 예약을 걸고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노쇼 범죄'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변호사는 "통상적인 인원인 소규모 인원이 아닌 수십 명 단체 예약을 했음에도 실제로 그런 모임이 없었다면, 이는 단순한 사정 변경이 아니라 애초부터 업무를 방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며 "명함까지 위조해 조직적이고 교묘하게 노쇼를 저질렀다면 업무방해의 고의성이 입증되므로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적으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식자재 비용 등 실질적인 손해에 해당하는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명함을 위조한 행위는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죄에 해당한다"며 "해당 명함을 이용해 노쇼를 할 의도가 있었음에도 이를 속여 선주문하게 만든 것은 업무방해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이어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재산을 편취하려는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단순 노쇼는 사기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고급 주류를 미리 결제하게 한 경우라면 사기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모방 심리와 초 영웅주의…‘노쇼 사기’의 심리적 배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같은 '노쇼 사기' 범죄가 단순한 장난이나 기행이 아닌 현대 사회의 왜곡된 심리와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된다. 모방 심리와 과시 욕구, 타인에 대한 폭력적 충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온라인 환경은 이런 행위를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에도 어느 정도 유행이 존재한다. 이런 범죄가 유행하는 이유는 모방 심리 때문"이라며 "자영업자, 예컨대 음식점 주인이 큰 피해를 보고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휴대폰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 범죄의 유행성과 모방성, 그리고 실행의 용이성이 함께 작용한다"며 "그 내면에는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어떤 심리적 만족을 얻으려는 인간의 폭력성이 내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예전과 달리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심리가 강하다"며 "이런 범죄는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초 영웅주의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SNS에 자신이 드러난 것만으로도 '내가 영웅이다'라는 심리를 충족시키는 셈"이라며 "알 만한 유명 연예인을 사칭하는 행위조차도 일종의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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