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주년] 〈6〉 지자체가 미래 농촌 설계한다
경북 문경서 농가 80곳 ‘공동 영농’… 법인이 경작-판매-배당까지 맡아
농사 참여땐 배당금-일당도 챙겨… “고령화-인력부족 해결 모델 부상”
20일 오후 경북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에서 만난 홍의식 ‘늘봄영농조합법인’ 대표가 말했다. 이날 율곡리 들녘에서는 감자 수확이 한창이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양파를 캐는 손길이 바쁘게 오갔다.
이 마을은 2022년까지 벼농사만 짓는 전형적인 단모작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전국 최초로 ‘주주형 이모작 공동 영농’ 모델을 도입해 여름에는 벼와 콩, 겨울에는 감자와 양파를 번갈아 재배하는 이모작 체제로 전환했다. 주주형 이모작 공동 영농이란 농가가 청년 등이 운영하는 영농법인에 논밭 경영을 맡기고, 법인이 경영과 유통을 전담해 창출한 수익으로 농가에 배당을 주는 방식이다. 농가는 제공 면적에 따라 배당금을 받고, 직접 농사에 참여하면 일당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문경에서는 2022년 농가 80곳이 늘봄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해 공동 이모작에 나섰다. 농지 110ha에 콩, 양파, 감자를 공동 재배한 결과 소득이 벼농사만 하던 시절보다 최대 3.2배 증가했다. 규모화로 생산성도 15∼20% 향상됐다.● ‘주주형 이모작’…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
1995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로 본격화된 지방자치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농림어업 중심 지역 상당수가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인구 유출과 고령화 해소를 위한 다양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 정부도 주목한 경북 모델, 전국 확산 시동
이모작 공동 영농은 단순한 소득 향상을 넘어 청년 인력을 농촌으로 유입시키고, 농업 인구 고령화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영농법인을 중심으로 한 공동 경작 모델은 고된 노동 없이도 배당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어 기존 고령 농가에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청년층에는 규모화된 첨단 농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공 덕에 공동 영농은 경북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혁신농업타운 2호’인 영덕군 달산지구는 벼 단모작에서 배추·콩·양파 이모작으로 전환했다. 이곳 농가들은 지난해 12월 3.3㎡당 3000원의 배당금을 지급받았다. 이 마을의 연간 총소득은 6억2500만 원이다. 벼농사만 할 때의 소득(1억4800만 원)보다 4배 이상 많다. 배추를 절임 가공해 출하할 경우 11억2500만 원까지 수익이 증가한다. 최근에는 농가 2곳이 새로 합류했다.
이모작 공동 영농 도입 지점은 2023년 7곳에서 올해 21곳으로 늘었다. 도는 2030년까지 100곳, 9000ha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올해를 확산의 원년으로 삼고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도 경북 모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모작 공동 영농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정부 시책으로 채택하고,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섰다. 경북도가 건의한 공동 영농 법인의 농지 임대 허용이 대표적인 예다. 이모작 공동 영농은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상호 영남대 식품경제외식학과 교수는 “이모작 확대는 쌀 과잉 생산을 조절하고, 식량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모작과 생산 첨단화를 비롯한 경북도의 농업 대전환 실험은 지역이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라는 농촌의 구조적 문제를 공동체 기반의 협업 모델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선도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지역이 우리 농촌의 미래를 설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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