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전상원 소장 “늦기 전 전문가 만나라”
우울증 환자 110만명 넘어 역대최대
평소 정신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부해 온 40대 직장인 A씨는 어느 날 회사 권유로 검진 프로그램 ‘심케어’에 참여했다가 뜻밖의 결과를 받았다. 회복탄력성, 직무 스트레스, 수면의 질 등이 유의하게 낮아 정밀 평가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에게 내려진 최종 진단은 ‘가면우울증’. 겉으로는 누구보다 쾌활하고 활동적이지만 내면은 우울과 무기력증으로 타들어가는 상태로,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A씨는 만성 피로와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 가면우울증임을 깨닫고 약물·정신치료를 시작했다. 6개월이 경과한 현재, 여러 신체 통증을 회복하고 건강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높은 자살률이 국가적 난제로 떠오른 가운데 직장인의 마음 건강은 단순한 개인 고충을 넘어 기업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최우선 사안이 됐다. 마음이 무너진 직원은 업무에 몰입하기 어렵고 이는 곧 조직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전상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장은 매경과 인터뷰하면서 “A씨의 사례가 현대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결근율보다 심각한 문제는 출근은 했지만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프리젠티즘’으로, 직장인의 정신건강 관리는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치매를 제외한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연간 약 300만명에 달한다. 특히 우울증 환자는 2024년 사상 처음 11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불안장애 환자와 공황장애 환자도 각각 100만명, 25만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20·30대 비중이 가장 높다.
전 소장은 “과거에 비해 업무소통 속도는 4배, 결재 속도는 8배가량 빨라졌고 가동 중인 업무용 메신저 방은 평균 9개에 달한다”며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늘어나면서 직장인의 뇌는 과부하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어 “쉼없이 쏟아지는 메시지와 즉각적인 피드백 요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정신적 파산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사상 불이익 걱정돼 상담 못받는다?
손으로 종이챠트 쓰고 회사에 제공안해
문제는 이러한 정신적 과부하가 심리적 문제를 넘어 신체적인 증상으로 전이된다는 점이다.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어지럼증, 두통, 식은땀, 빈뇨 등이 대표적이다.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되면 관련 호르몬이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신체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심한 경우 심장과 폐 기능이 일시적으로 교란돼 공황 발작이나 실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 소장은 “자율신경계는 의식하지 않아도 심장 박동, 호흡, 소화 등 생명유지 기능을 자동 조절하는 관제탑과 같다”며 “공황 발작은 갑작스러운 증상처럼 보이지만 내 몸이 보낸 임종 신호를 줄곧 무시해온 결과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 전문가 개입은 필수다. 이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예방부터 조직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4단계 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1단계에서는 자살 예방과 질환 교육을 실시하고 2단계에선 스크리닝을 통해 유소견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한다. 3단계는 사내 상담실을 통해 실제 치료와 멘탈 코칭을 제공한다. 마지막 4단계에서는 회사 전체의 소통 구조와 조직 문화를 분석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단편적인 상담이 아닌 37명의 전문의를 직접 고용하고 23개의 현장 클리닉을 운영하는 곳은 강북삼성병원이 유일하다. 2011년 출범 당시 전문의 3명이 4개 기업을 전담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질적 성장에도 전 소장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그는 “통합 시스템을 갖춘 연구소가 단 한 곳뿐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 관리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준다”며 “제2, 제3의 연구소가 계속 등장해야 직장인들의 마음을 더욱 촘촘하게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상담을 꺼리는 직장인들을 위해 ‘철저한 독립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다. 상담 기록이 회사에 공유되지 않도록 디지털 시스템 대신 수기 종이 차트 작성을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역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순간 계약은 즉시 파기된다’는 조항을 명확히 넣는다. 전 소장은 “철벽 보안 원칙이 기업들의 전폭적인 신뢰로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창의성이 핵심 경쟁력인 IT·게임 업계는 직원의 정신건강을 조직의 전투력으로 인식하고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담 범위는 개인을 넘어 가족 문제로까지 확장됐다. 전 소장은 “코칭 프로그램의 30~40%가 배우자 갈등이나 자녀 양육 관련 상담”이라며 “가정의 안정은 직원의 업무 몰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내 상담실은 건강보험 수가 제약 없이 대리 상담이 가능해 가족 관계 회복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 치료에는 약물 치료가 병행된다. 공황장애나 우울증 치료제는 내성이나 중독성이 없으며 스트레스로 고갈된 세로토닌을 보완해 증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전 소장은 “스트레스라는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우산을 씌워주는 개념으로 원인이 해소되면 약물은 중단할 수 있다”며 “이미 발작을 경험한 직장인이라면 조기에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뇌출혈이나 대형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의 최종 목표는 세대·성별·직급 등 3대 갈등을 해결하는 조직문화 컨설팅의 표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을 구현하는 핵심 도구인 심케어는 올해 상반기 3.0 버전으로 고도화된다. 가장 큰 특징은 연령, 성별, 직군 특성을 반영해 대한민국 직장인 전체에서 개인의 정신건강 위치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 소장은 “기존 검사가 ‘우울 점수가 높으니 병원에 가라’는 권고에 그쳤다면 심케어는 같은 직업군 내에서의 내 포지션을 명확히 짚어준다”며 “내 우울감이 ‘상위 1% 고위험군’이라는 사실을 수치로 인식하는 순간 치료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는데, 이것이 십여년간 축적한 데이터의 힘이자 특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익명 커뮤니티 앱 ‘마음몬케어’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기존 블라인드 앱이 감정을 쏟아내는 대나무숲 역할에 머물렀다면 마음몬케어는 그 고민을 의학적 알고리즘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전 소장은 “IP(인터넷 프로토콜) 추적이나 정보 유출 우려가 없는 강력한 보안을 기반으로 음지에 있던 화병과 고충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라며 “인공지능(AI)이 개인별 맞춤 강의나 인지행동치료를 제안해 실무 복귀를 돕는 한편, 회사에는 조직 개선을 위한 건설적인 피드백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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