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선물 [권지예의 이심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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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선물 [권지예의 이심전심]

최근에 사진을 잘 찍는 선배 작가가 불타오르는 절정의 단풍부터 낙엽 지는 만추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단톡방에 보내줬다. 감성 돋는 그 정경을 보며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던 차에 지난 주말에 받은 사진 한 장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사위어가는 석양빛을 받으며 커다란 나목의 가지에 딱 한 장의 나뭇잎만 매달려 있는 사진이었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떠올랐다. 어느새 긴 겨울 소멸의 시간으로 들어선 세월의 허무함이 잠시 밀려왔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다른 작가의 톡이 올라왔다. ‘오늘 새벽에 아버지께서 가셨어요.’ 그의 아버지가 오래 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친정집에 7년째 꼼짝 못하고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 2010년 발병한 암으로 수술만 세 번, 그 후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 수술과 척추 골절로 총 유병기간이 15년이 넘은 어머니.

아주 오래전 11월 말, 인생에서 가족의 첫 죽음을 경험했다. 의연하게 암투병을 하던 꿈 많은 여고생 동생에게 끝내 ‘마지막 잎새’의 기적은 없었고, 죄 없는 생명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인디언의 달력에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 내 슬픔을 치유해준 것은 8할이 그 말이었다. 당시 갓 마흔이 넘은 어머니는 아픈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죄로 아플 때 아프다는 말을 절대 내뱉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건 어머니 스스로가 정한 일종의 속죄였을까.

“걔만 생각하면 난 아픈 게 세상에 하나도 없다.”

어머니에게 아픈 손가락, 아니 차라리 그건 진통제였다. 여동생이 죽은 지 40년이 된 날에 실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가서 위령미사를 봤다. 그러나 한 달 남짓 지난 후 온 세상이 코로나19 세상이 됐고, 그 무렵 어머니는 또 낙상으로 척추 골절상을 입고 영영 회복하지 못하셨다. “난 편안하니 걱정 마. 얼마나 다행이냐. 내가 원래 누워 있는 걸 좋아했잖냐.” 침상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 웃음 속에 담긴 단단한 평안함이 오랜 기간 내 마음을 지켜줬다.

그런데 오랜 와병 생활로 서서히 정신줄을 놓아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아기가 돼가며 아플 때마다 당신의 엄마를 애절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아프고 약한 인간에게 세상 모든 단어 중에 단 하나의 마지막 단어를 고르라면 ‘엄마’를 고르지 않을까. 엄마를 애절하게 부르는 아기 같은 내 엄마를 보면서 나도 엄마, 엄마 부른다.

부모님 간병하는 자식도 노인인 요즘 시대에 아픈 부모 앞에서 덜 늙은 아픈 자식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낀 세대인 우리 세대야말로 부모를 부양하고 집에서 간병하는 마지막 자식 세대가 아닐까. 아직도 가부장적 이념인 효의 그림자와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지막 자식 세대.

의술의 발달로 기대수명(평균 수명)은 크게 늘었지만, 질병이나 장애 없이 건강한 상태로 지낼 수 있는 건강수명과의 격차는 10년 이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어머니 역시 오랜 세월 아픈 몸으로 지내셨지만, 1월 1일이 되면 늘 이렇게 새해 인사를 해주셨다. “얘야, 지난해도 고마웠는데, 내가 또 새해를 선물 받았구나.” 내게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귀한 선물이었다.

이제 마지막 잎새처럼 한 장만 남은 달력. 1월만 되면 삶을 또 1년 선물 받았다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시간은 지금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하지만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인 11월을 지나 준비하는 12월이 되고, 1월 새해로 이어지는 시간은 단절되는 게 아닐 테다. 이어지는 삶의 순간이 고마운 선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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