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딱 하나 잘한 일이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를 설치한 것이에요. 임시 자문기구가 아니라 중장기 핵심 교육정책을 수립할 초당적 기구인데, 잘만 활용하면 정권에 좌우되지 않고 중장기 교육정책을 만들 수 있죠.”
국교위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지만 서울의 한 대학교 총장은 아직도 국교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설립 취지대로만 잘 작동된다면 국교위가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과 틀을 논의해 결정하고, 교육부는 이를 집행하는 역할을 맡아 100년 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대계는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실은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다. 보수·진보 성향 위원들끼리 갈등을 겪으며 파행을 거듭하다가 국교위는 최근 소속 전문위원회를 해체했다. 현재 재구성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지난 13일 회의 직전까지 19명의 위원을 모두 구성하지 못해 회의 5분 전 ‘전문위원 2기 위원 위촉안’을 안건에서 제외했다. 국교위는 일주일 내로 재구성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육계 시각이다.
설사 재구성하더라도 3개월 안에 대학 입시 등 향후 10년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만들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교위는 전문위 보고를 토대로 중장기 교육 발전 계획 최종안을 만들어 내년 3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진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은 다루지 않고 ‘재탕’ 또는 ‘맹탕’ 계획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 지난 9월 국교위는 향후 10년간 추진할 교육정책 방향 12가지를 공개했는데 양질의 영유아 교육, 교육복지 실현, 존경받는 스승 지원 등 미사여구만 나열하고 구체적 내용이 없어 비판을 받았다.
교육에서만큼은 진영 간 싸움을 접어두고 제대로 된 중장기 교육정책을 세워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암기 위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측정하기에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적절하지 않다면 수능에 논·서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게 좋을지,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을 주는 게 좋을지 논의가 필요하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내신 평가를 어떻게 고도화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보수·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위원장의 포용적 리더십은 필수다. 위원 구성 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교위에 대한 대학 총장의 기대가 희망고문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