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슈퍼주니~어에요!"
그룹 슈퍼주니어가 콘서트를 통해 팀의 '20년 존재 이유'를 증명해냈다. 흠잡을 데 없는 라이브, 웅장한 군무 등 고유의 아이덴티티에 더해 한층 끈끈해진 팀워크, 강력해진 무대 장악력과 흡인력을 보니 '아이돌 20년 왜 못 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이다. 아이돌 생명 연장의 꿈, 현실로 만든 슈퍼주니어다. 동시에 재미있다고 소문난 공연인 '슈퍼쇼'의 다음도 꿈꿀 수 있게 됐다.
슈퍼주니어(이특·희철·예성·신동·은혁·동해·시원·려욱·규현)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0주년 기념 콘서트 '슈퍼쇼 10(SUPER SHOW 10)'를 개최했다. 지난 22, 23일에 이은 3회차 공연이다.
'슈퍼쇼'는 2008년 시작된 슈퍼주니어의 월드투어 콘서트 브랜드다. 올해 진행되는 '슈퍼쇼10'은 10번째를 맞는 공연인 데다, 2005년 11월 데뷔한 슈퍼주니어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까지 더해져 더욱 특별했다.
슈퍼주니어는 2000년대 아이돌 인기 부흥을 일으킨 동방신기의 기세를 이어받아 '다인원 그룹'이라는 신선한 매력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데뷔 때부터 히트곡을 쏟아내며 한류 선봉장에 섰던 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팬들을 결집시키며 'K팝 대표 그룹'으로 위상을 떨쳤다.
해외 팬덤 화력으로 아시아를 휩쓸었고, K팝의 유럽과 남미 진출도 주도했다. 한국 그룹 최초 프랑스 단도 콘서트, 한국 가수 사상 최대 규모 남미 투어, 아시아 가수 최초 사우디아라비아 단독 콘서트 등의 기록을 전부 슈퍼주니어가 썼다. 지금까지 아시아, 유럽, 중남미 전 세계 30개 이상의 지역에서 통산 194회의 공연으로 약 330만명을 동원했다. 동시에 국내에서의 대중성까지 두루 갖춘 팀이라 존재감은 더욱 빛난다.
'슈퍼쇼10'을 통해 20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슈퍼주니어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슈퍼주니어를 향한 기대감은 '티켓 전석 매진'으로 이어졌다. 시야제한석까지 전부 팔리며 3일간 총 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현장은 해외 팬들로 북적였다.
공연은 슈퍼주니어의 20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 시간을 알차게 채워온 히트곡 릴레이는 물론이고, 무대 역시 '10'을 뜻하는 로마자 'X'를 활용해 돌출 무대를 사방형으로 쭉 뻗게 만들었다. 무대 위 쪽으로도 동일한 X자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돼 조명 타워 및 공중 무대로 활용되며 압도적인 규모감을 자랑했다.
멤버들이 직접 공연 기획을 주도하기도 했다. 세트리스트 및 퍼포먼스 구성 은혁, VCR 연출 신동, 관객 인터랙티브 기획 이특, 스타일링 아이디어 예성, 악기 연주 희철까지 멤버들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는 무대였다.
연신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을 뚫고 슈퍼주니어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무대에 나란히 선 9명의 웅장한 자태만으로 감동이 밀려왔다. 데뷔곡 '트윈스'로 포문을 연 데 이어 규현이 합류했던 'U'의 무대가 펼쳐지는 오프닝 구성은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안겼다.
이어 '너라고', '블랙 수트', '마마시타', '슈퍼맨', '슈퍼 걸', '헤어 컷', '세이 레스'까지 거침없이 소화한 슈퍼주니어였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이들의 모습에서 연륜 그 이상의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장수돌' 대열을 이끌고 있음에도 무대 위 슈퍼주니어에게서 잔꾀나 꼼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쾌감을 주는 다인원 군무에 시원시원한 보컬, 여유 넘치는 무대 매너와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단숨에 장내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규현은 "올해 처음으로 카페인을 먹었다"며 "오늘 체력을 아낄 필요가 없다. 모든 걸 이 무대에서 쏟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이특은 "3일 간의 공연이 쉽지는 않다. 우리 나이를 다 합치면 360살이 넘는다. 평균 나이 40세가 넘어가는 현존하는 아이돌 최고령 그룹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내 "많은 사람들이 '쟤네 안 될 거야', '쟤네 지쳤을 거야', '한 두 곡 하고 멘트만 계속 하겠지?'라고 생각할 거다. 아니다. 오늘 공연을 보고 '제발 그만해', '저러다 20~30년 더 하겠다'라고 느끼실 것"이라고 말해 박수받았다.
'슈퍼쇼'는 공연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멤버들의 무대 장악력과 유쾌한 입담으로도 유명하다. 멋있는 무대에 재치 넘치는 멘트로 '누가 봐도 재미있는 공연'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명성에 걸맞게 슈퍼주니어는 한 시도 쉬지 않고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강렬하게 열어젖힌 오프닝에 이어 '우리들의 사랑'을 부를 땐 공중 무대에 올라 감미롭게 노래했고, '너 같은 사람 또 없어', '너로부터'를 부를 땐 객석을 직접 돌아다니며 팬들과 눈을 맞추고 가까이서 소통했다.
차분한 곡인 '잠들고 싶어'와 '도로시'를 부르기에 앞서서는 팬들을 향한 진심을 털어놨다. 이특은 과거 팀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가장 큰 위기이자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동, 은혁과 병원에서 규현이의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화장실에 가서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울컥했다. 그러다 "규현이가 건방지게 있는 모습을 보면…다행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멤버, 엘프(공식 팬덤명)들이 함께 울고 걱정해 주고 걱정해 줘서 20년까지 왔다"
이특은 이같이 말하며 엘프를 '슈퍼주니어의 영원한 사랑, 영원한 친구'라고 표현했다. 슈퍼주니어를 바라보며 K팝 팬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이와 같을 테다. 앨범을 사고,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던 K팝 팬들에게 슈퍼주니어는 '추억'이자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다. 슈퍼주니어의 행보를 줄곧 지켜봐오지는 못했더라도, 언제든 이들의 음악과 무대를 꺼내볼 수 있도록 20년 간 팀을 지켜오며 모두의 '기댈 곳'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은 K팝이 지닌 더없이 소중한 가치다.
동물 잠옷을 입고 부른 '미라클'을 부를 땐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반가운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미스터 심플', '미인아', '쏘리쏘리', '돈 돈!'으로 이어진 히트곡 릴레이는 슈퍼주니어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보여줬다. 전성기 시절의 퍼포먼스를 거뜬히 소화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감탄 섞인 환호성이 쏟아졌다. 무대를 장악하고 끌어가는 에너지는 더 진화했다. 이특은 과감하게 상의를 탈의하기도 했다. 신곡 '익스프레스 모드' 무대는 한층 견고하고, 유연하고, 진해진 슈퍼주니어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D.N.A.', '록스타', '아차' 무대에서는 귓가를 때리는 EDM 사운드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팬들과 함께 방방 뛰면서 열정을 터트렸다. 다만 공연 중 규현이 부상을 당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규현은 무대를 내려가다가 접질려서 근육이 놀라는 부상을 당했다. 이에 후반부 공연은 춤을 추지 않고 참여했다. 앙코르 때는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나왔다. 본인이 가장 속상한 상황일 텐데도 그는 "이거 우산인데 웃기지 않나"라며 팬들을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공연을 마치며 슈퍼주니어는 '슈퍼쇼11'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멤버들은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우리가 있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서 저희의 20주년을 축하해 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추억해줘서 감사하다. '슈퍼쇼11'까지 하고 싶다는 꿈을 꿨는데 그게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규현은 "공연장을 3일 내내 시야제한석까지 채워주셔서 슈퍼주니어가 30주년까지도 무조건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특은 "슈주가 사실 언제까지 할 지 모른다. 항상 듣던 말이 '너네 끝난 것 같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20주년까지 왔다. 30주년, 40주년 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계속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현장에 있는 탁영준 SM엔터테인먼트 대표로부터 월드투어를 다녀온 뒤 앙코르 공연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내 팬들을 열광케 했다.
'슈퍼쇼10'은 서울 공연 이후 9월 홍콩·자카르타, 10월 마닐라·멕시코시티·몬테레이·리마·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마카오·쿠알라룸푸르·가오슝, 3월 사이타마로 이어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