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절반도 못 채워"…벼 면적 조정제 좌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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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내달 1일 지자체와 '추진실적 점검회의'
정부 목표치 8만ha 절반도 못 채웠는데
하위 20개 시·군 담당 과장 소환에 지자체 반발
농가도 '조정제 폐지' 주장…민주당선 양곡법 재추진

  • 등록 2025-04-30 오전 5:00:00

    수정 2025-04-30 오전 5:00:00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정부가 쌀의 근본적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쌀 재배면적 조정제’가 난항을 겪고 있다. 조정 방식에 대해 농가 및 현장 지자체의 반발이 끊이지 않으면서, 참여 실적이 정부의 목표치를 크게 밑돌면서다.

여기에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점도 정책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추진실적 점검 나서지만…정부 목표치 절반도 못 미쳐

29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달 1일 ‘벼 재배면적 조정제’ 추진실적 점검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으나, 돌연 취소했다. 각 시·도별로 조정제 추진 상황을 공유하고, 어려움이 있는 지자체에는 우수 지자체의 노하우를 전하는 등 참여 실적을 끌어 올리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회의에 16개 시·도의 조정제 담당 과장들은 물론 벼 재배면적 조정제 시스템 실적이 낮은 하위 20개 시·군 담당 과장들까지 불러 모은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강제 할당’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넘어 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소명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농가에서 워낙 반대가 심해 현장 담당자들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실적에 따라 소집까지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결국 현장의 반대에 부담을 느낀 농식품부에서 회의를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조정제의 참여 실적도 아직 저조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시·도의 벼 재배면적 조정제 신청 규모는 정부의 목표치인 8만ha의 절반인 4만ha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필지별 세부적인 감축면적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있는 단계”라며 “5월 말까지 전략작물직불제, 지자체 자체 타작물 재배지원 신청을 받기 때문에 참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농가 잇달아 ‘조정제 폐지’ 반발…인센티브 역부족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두고 잡음이 지속하고 있다. 조정제는 작년 쌀 생산량에 따라 지자체별로 줄여야 할 할당 면적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농식품부는 올해 이를 통해 전국 배 재배면적 72만㏊의 11%인 8만㏊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식생활 변화로 매년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쌀 재배면적을 줄여 근본적인 쌀값 안정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8만ha를 감축하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40만t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농민단체에서는 ‘강제 감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잇달아 조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에서 농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검토한 농가별로 ‘감축 면적 통지’도 농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계획을 마련하도록 선회했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할당 면적을 줄이도록 했지만, 참여에 따른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조정제에 참여한 지자체의 유일한 인센티브로 공공비축미 우선 배정을 내놓았다. 하지만 최근 산지 쌀값도 오르는 상황에서 농가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대선 공약으로 ‘양곡법’ 재추진도 걸림돌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7일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쌀값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인센티브 확대와 판로 보장으로 타 작물 경작 전환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 후보가 민주당 대표 시절 ‘1호 민생 법안’으로 내건 것이다. 쌀값 안정을 위해 남는 쌀은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매년 남는 쌀을 매입하는데 들어갈 막대한 재정 낭비 및 쌀 공급 과잉 심화 등 부작용을 우려해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문가들은 양곡법 개정안을 재추진하면, 조정제가 동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벼 재배면적이 늘어나 공급 과잉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한호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동원해도 농민들이 쌀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구조인데, 정치권에서 더욱 방패막을 만들어주는 꼴”이라며 “재배면적이 늘어나면 구조적 공급 과잉 심화는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쌀 판매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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