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곳으로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검은 사제들' 김신부(김윤석)과 최부제(강동원)이 부재한 한국. 구마가 허락되지 않은 수녀들이 금지된 의식에 나선다. 송혜교, 전여빈 주연의 '검은 수녀들'의 이야기다.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희준(문우진)의 몸에 숨어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당장 올 수 없는 구마 사제를 기다리다 부마자가 희생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유니아 수녀는 희준을 구하기 위해 금기를 깨기로 결심한다.
희준의 담당의 바오로 신부(이진욱)는 의학만으로 희준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제자 미카엘라 수녀(전여빈)이 자신과 같은 비밀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유니아 수녀는 희준을 병원에서 빼내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다.
미카엘라 수녀는 유니아 수녀에게 반발심을 느끼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드는 희준을 위해 바오로 신부의 기대를 뒤로한다.
'검은 수녀들'은 2015년 개봉해 544만 관객을 모은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 영화다. '검은 사제들'이 나온 지 10년 만에 영화사 집이 '검은 수녀들'을 기획, 제작하고 권혁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남성 사제만이 서품을 받을 수 있고, 서품을 받은 자만이 구마를 할 수 있다는 가톨릭 교리와 전통에 따라 구마가 허락되지 않은 신분인 수녀가 금지된 의식에 나선다는 것부터 흥미롭다. 거기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로 연기 재조명받은 송혜교와 영화 '하얼빈', 드라마 '빈센조'를 통해 충무로의 대세 배우가 된 전여빈이 뭉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마에 나서는 유니아 역의 송혜교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구마 의식 전 하늘을 향해 담배를 내뿜는 유니아의 모습은 마치 타락 천사와 같다.
송혜교는 "이번 영화에서 흡연 연기를 처음 했는데 비흡연자라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유니아 수녀만 생각하고, 캐릭터만 생각하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촬영 6개월 전부터 흡연을 시작했다고. 그는 "좋은 건 아니지만 담배를 피우는 연습을 하게 됐다"며 "첫 신이 흡연신이고 클로즈업 신이라 거짓말로 담배를 피우고 싶진 않아서 연기 연습도 많이 했지만, 담배 연습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송혜교는 '검은 수녀들'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장르물'에 대한 애정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는 "'더 글로리'를 끝내 놓고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며 "그래서 시나리오, 대본을 장르물 위주로 보고 고르고 있었는데 그때 '검은 수녀들' 시나리오를 읽게 됐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이 작품을 하면 내게 몰랐던 새로운 표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어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여빈은 미카엘라 역에 대해 "대사보다 리액션이 중요한 역할이었다. 물론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의 향연이라 안 중요하지 않은 연기가 없는데 미카엘라에게 더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상황을 잘 바라볼 수 있게 집중하려 했다. 제가 볼 땐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미카엘라는 구마를 위해 돌진하는 유니아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전여빈은 송혜교의 면전에서 욕설 연기를 한 소감에 대해 "후배로서 쉽지 않았지만 유니아 캐릭터를 향한 미카엘라의 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고 했다. 이어 "두 사람은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마음은 여성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해야 하는 더 큰 신념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작품에서 단계적으로 나아가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부분이 좋았고, 이것이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송혜교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전여빈은 "현장에서 송혜교 선배를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며 "행동을 보며 많이 배웠다. 아마 미카엘라도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송혜교 또한 "전여빈과 연기를 하며 행복한 기억이 많다. 영화 내용은 행복하지 않지만, 작품을 하며 가까워진 모습이 영화 속과 비슷했다"며 "두 여성이 다른 신념을 가졌다가 하나 되는 과정을 연기하는 게 어려웠지만 즐거웠고,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화답했다.
악령에 씐 희준 역을 연기한 문우진은 "대사에 욕설이 많아서 연기할 때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송혜교에 침을 뱉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노심초사했다. 결국 좀 사리게 됐는데 그런 부분이 걱정이었다"고 했다. 이어 "이런 연기를 하다 보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기에 연기하기 전후 상담을 받게 해주셨다. 저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즐거운 현장이라 트라우마는 없었고 무사히 영화를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이진욱은 "너무 멋진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고 있다"며 "방금 봤는데 괜찮은 것 같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앞으로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가 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검은 수녀들'은 수녀들의 구마 의식 외에도 무속신앙, 타로 카드 등 신선한 설정을 더 했다. 유니아 수녀의 거침없는 행보와 선택이 가져온 무속적 요소는 영화에 이색적인 재미를 더하고 영화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넋건지기굿’(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물속에서 건져 저승으로 보내주는 굿)에 영감을 받아 영화적으로 창작된 ‘효원’의 굿, 출산을 관장하고 아이를 지키며 돌보는 조상신인 삼신할미를 상징하는 목화솜 등 무속적 요소는 희준을 반드시 살리려는 유니아 수녀의 강한 의지와 어우러져 드라마틱하고 특별한 재미를 전한다.
권 감독은 "개인적으로 '검은 사제들'의 팬이었고, 영화사를 통해 대본을 받아봤을 때 어쩜 이렇게 신선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마 의식에 수녀들이 참여하고, 연대하는 부분이 뭉클했다. 구마 의식은 특유의 리듬과 긴장감을 가지는데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가 팽팽히 담겼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인간이 절실한 마음으로 소년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숭고함에 대한 울림이 있었다. 거기에 송혜교라는 배우가 한다고 했을 때 잘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감탄했다. 그런 부분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에는 '검은 사제들'에서 최부제 역을 연기했던 강동원이 깜짝 출연했다. 권 감독은 "강동원 배우가 영화사 집과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맺고 있었다"며 "'검은 수녀들'이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니, 관객들도 반가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 촬영할 때 그 모습 그대로라 감동했고, 열심히 준비해 줘서 감탄했다"고 말했다.
'검은 수녀들'은 오는 24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