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전쟁' 뒤에선 크레딧 전쟁…감독 vs 제작사 법정공방 [무비인사이드]

개봉을 한 달 앞둔 유해진, 이제훈 주연의 영화 '소주전쟁'이 관객맞이로 분주한 가운데 스크린 뒤편에선 말 못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소주전쟁'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을 배경으로 소주 회사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과 글로벌 투자사 직원 인범(이제훈)이 대한민국 국민 소주의 운명을 걸고 펼치는 대결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를 제작한 더램프(박은경 대표)가 제작하고, 국내 5대 영화배급사인 쇼박스가 배급한다.

그러나 '소주전쟁' 크레딧에는 이례적으로 감독 이름이 없다. 대신 '현장 연출 최윤진'이라는 표기가 들어가 있다.

더램프 측은 영화사꽃 대표이기도 한 최윤진 감독이 '소주전쟁'과 '심해'의 원안 작가들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각본을 가로채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하며 이로 인해 감독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최근 열린 '소주전쟁' 제작보고회에도 감독석은 비어있었다. 출연 배우 유해진, 이제훈, 손현주, 최영준만이 참석했다. 행사에서 MC를 맡은 박경림은 "오늘은 불가피하게 배우들만 모시게 됐다"며 "법적인 판단을 기다리는 부분이 있어서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쇼박스 측은 "제작 도중 감독이 해촉되었으며, 기여도를 감안해 '현장 연출'로 크레딧을 표기했다"며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 민사 본안 소송과 가처분 신청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윤진 감독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감독이 신인 작가의 시나리오를 탈취했다는 말은 황당하다"며 "이번 크레딧 분쟁은 감독을 사회적으로 생매장하겠다는 제작자와 돈에 양심을 판 신인 작가가 손을 잡으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해 최 감독은 제작자의 '보복성 해고'라는 생각이다. 그는 "2023년 '심해'라는 공동제작 작품으로 저와 저작재산권 갈등을 겪고 있던 더램프가 '심해'를 가져올 수 없게 되자 '소주전쟁' 시나리오에 대한 크레딧 조율 문제를 박현우 작가와 함께 각본 탈취로 둔갑시킨 후 감독 해고까지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감독은 2020년 10월 30일 '소주전쟁'(당시 '모럴해저드') 감독 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 당시 그는 이 영화의 원안이 된 '에너미'라는 작품이 존재하며, 박현우 작가와 공동 집필한 것이라고 더램프에 밝혔다고 했다.

하지만 '에너미'와 유사한 론스타를 소재로한 영화 '블랙머니'(2019)가 개봉하면서, 최 감독은 이를 진로소주와 글로벌 사모펀드의 대결로 각색한 ‘소주전쟁’ 시나리오를 새로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재, 사건, 주제를 모두 바꿔 혼자 집필한 작품"이라며 "'에너미'에서 일부 인물 설정만 가져왔고, 이 사실은 이미 미팅 당시 제작사에 모두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최 감독 입장에선 갑작스러웠다. '소주전쟁'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을 하던 중 감독에서 해임된다는 내용증명을 받게 된 것이다. '심해' 각본을 최윤진 감독이 탈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이에 더램프 측은 '소주전쟁' 또한 한국시나리오조합에 판단을 맡기게 된다.

조합은 세 명의 판정위원에게 작가 정보를 비공개한 채 A작가, B작가로 시나리오를 제출받아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박현우 작가를 1각본, 최윤진 감독을 2각본으로 판정했다. 이에 따라 제작사는 '소주전쟁' 크레딧에 '원안 박현우', '각본 박현우 최윤진' 순으로 기재를 확정했고 최 감독은 이에 반발했다.

최 감독은 박현우 작가와의 이메일을 공개하며 "당시 박현우 작가는 ''에너미'와 '소주전쟁'의 큰 구조가 비슷하지만 디테일과 에피소드들이 다르다. '에너미'와는 달리 사건이 주인공인 영화로 느껴진다'고 리뷰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작가는 내용이 얼마나 바뀌었든 '원안' 크레딧보다는 '각본' 크레딧을 받고 싶어했다. 더램프 박은경 대표로부터 '소주전쟁' 제1각본을 보장받은 후 언론전에 나서 내 동의 없이 '소주전쟁' 시나리오를 본인이 쓰고 내가 표절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에너미'를 공동 집필한 박현우 작가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최윤진 감독이 '모럴해저드' 시나리오 2고로 계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제가 느끼기에 해당 시나리오는 '에너미'가 적극 활용되고 변주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최 감독은 "제 기여도를 고려해 현장 연출이라고 했다는데 제 기여도가 현장에만 있었겠나 2년 동안 시나리오를 썼고, 그 시나리오로 유해진, 이제훈이 출연을 결정하고 쇼박스가 투자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촬영 준비 4개월, 촬영 3개월간 누락 없이 스케줄을 완료했고 3주간 1차 편집본을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감독이 할 일을 한 건데 마치 현장에서만 일한 것처럼 격하시킨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3년간 사람이 짓밟히면 지렁이도 꿈틀하는 법이다. 말도 안되는 누명을 쓰고 살면 후회할 것 같아서 발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에는 피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감독 크레딧을 제대로 올리고 지금이라도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안을 지켜본 한 관계자는 최윤진 감독이 주장하는 '보복성 해임'이 아니라, 그간 작가들과의 계약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 감독이 작가들의 존재는 언급했지만, 실질적인 기여도나 역할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남의 시나리오로 입봉하는 건 명백한 반칙"이라며 "소재만 바뀌었을 뿐, 문제의 본질은 결국 시나리오에 있다"고 지적했다.

감독과 작가 사이의 권력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모 제작사 관계자는 "작가와의 관계에서는 감독이 더 강자다. 그러나 '제작사 대 감독'의 프레임을 만들면 본인이 약자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작가에게 사과하고, 정산 문제도 제대로 정리했으면 조용히 마무리될 일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일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더램프 측은 현재 영화 개봉이 임박한 만큼, 사태의 조속한 정리만을 바라며 말을 아꼈다.

쇼박스 측도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길 바랐으나, 개봉을 앞둔 시점까지도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가처분 결과에 따라 공식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