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를 누르기 전에, 그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4·19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시신 사진과 97세 박용윤 기자[청계천 옆 사진관]

4 hours ago 4

백년사진 No. 160

● 1960년 봄, 마산 도립병원

1960년 4월, 동아일보 사진기자 박용윤은 마산 도립병원에 서 있었습니다. 태극기에 덮인 시신 앞이었습니다. 행방불명됐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열여섯 살 김주열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지금봐도 너무 참혹한 장면이라 이 글에서는 따로 공유하지 않겠습니다.

김주열(金朱烈)군의 생전 모습- 3.15마산의거의 도화선이 됨.

김주열(金朱烈)군의 생전 모습- 3.15마산의거의 도화선이 됨.
그 자리에는 외신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카메라를 들기 전에 먼저 시신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이 못처럼 박혔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는 것.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박용윤도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아래 사진은 당시 기록을 모아 발간했던 사진집의 표지입니다.

4.19 혁명을 기록한 사진집  ‘민주혁명의 기록’ 표지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 발표에 환호하는 시민들 모습. 이 사진집은 당시 박용윤 기자를 포함한 동아일보 사진기지들이 취재한 사진 등을 모아 동아일보가 4.19혁명 36일 만인 6월 1일 발간한 것이다.

4.19 혁명을 기록한 사진집 ‘민주혁명의 기록’ 표지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 발표에 환호하는 시민들 모습. 이 사진집은 당시 박용윤 기자를 포함한 동아일보 사진기지들이 취재한 사진 등을 모아 동아일보가 4.19혁명 36일 만인 6월 1일 발간한 것이다.
들불처럼 커진 시민들의 분노에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에서 물러났습니다.

1960년 6월 19일 오끼나와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이 비행기안에서 동아일보가 발간한 4.19화보 ‘민주혁명의 기록’을 펼쳐 김주열군의 사체와 고대생들이 깡패에게 습격 당하는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다. 왼쪽은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대표 특파원인 홍승면 한국일보 편집국장. 〈1960.6.19/최경덕/ 동아일보 DB〉

1960년 6월 19일 오끼나와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이 비행기안에서 동아일보가 발간한 4.19화보 ‘민주혁명의 기록’을 펼쳐 김주열군의 사체와 고대생들이 깡패에게 습격 당하는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다. 왼쪽은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대표 특파원인 홍승면 한국일보 편집국장. 〈1960.6.19/최경덕/ 동아일보 DB〉
● 66년 뒤, 그가 피사체가 되어 앉았습니다

올해 3월 20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국화실. 제32회 박용윤 보도사진 인간애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박용윤 기자가 직접 기금을 출연해 만든 상입니다. 후배들이 따뜻한 인간애를 담은 사진을 찍는 기자가 되길 바라는 뜻으로 32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수막 앞에 세 사람이 섰습니다. 꽃다발을 안은 수상자, 정장 차림의 관계자,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휠체어의 노인.

노인의 이름이 박용윤입니다. 1929년생. 올해 97세.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의 시상식에 직접 나타난 것입니다.

2026년 3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 32회 인간애상 시상식. 인천일보 이재민 기자가 수상했다. 앞자리가 박용윤 기자. 뒤쪽 오른쪽은 이종세 대한언론인회 회장.  변영욱 기자cut@donga.com

2026년 3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 32회 인간애상 시상식. 인천일보 이재민 기자가 수상했다. 앞자리가 박용윤 기자. 뒤쪽 오른쪽은 이종세 대한언론인회 회장. 변영욱 기자cut@donga.com
사진 속 그의 두 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습니다. 1960년 마산에서, 부산에서, 세종로에서 셔터를 눌렀던 그 손입니다. 마산 도립병원에서 외신 기자들이 먼저 고개를 숙이던 장면을 보고 품었던 그 마음이, 이름이 되어 현수막에 걸려 있습니다.카메라를 들고 역사의 순간들을 찍던 사람이, 이번엔 피사체가 되어 앉아 있습니다.

● 사진은 찍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는 원래 건축을 하려 했습니다. 뭔가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참호에서 89명 중 2명만 살아남은 전투를 겪은 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지에서 돌아온 그는 병사가 쓰러지는 사진 한 장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건축보다 이런 사진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 선택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수중촬영, 도쿄올림픽 특파, 멸종된 줄 알았던 먹황새 특종. 기업인이 “촌지를 안 받는 기자는 처음 봤다”고 할 만큼 원칙을 지켰고, 전우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평생 헌혈을 50회 이상 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늘 말했습니다. “사진은 기술보다 가슴으로 찍어야 한다.”

지금 그는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입니다. 그러나 내가 건넨 명함을 보시곤 글자를 또렷하게 읽으셨습니다.

뭔가를 남기고 싶었던 청년은, 결국 남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4월 19일, 그가 셔터를 눌렀던 날로부터 66년이 지났습니다.

이 사진 앞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백년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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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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