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에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중국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중동은 중국의 에너지 수급과 외교 전략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중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절반을 잃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미국의 외교·군사 자원이 중동으로 분산돼 남중국해, 대만 해협 등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해양 패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원유 수입·일대일로 차질 우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이번 중동 갈등이 중국 안보·외교 전략에 구조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그동안 중동에 쏟아온 경제적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파급 효과가 클 것이란 진단이다. 쉬웨이쥔 화난이공대 연구원은 “중동의 불안정은 중국의 대외 투자와 공급망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은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절반 이상이 통과하는 핵심 해로로, 봉쇄될 경우 에너지 수급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큰 충격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란과 긴밀한 경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대이란 직접 투자는 3억2200만달러, 누적 투자액은 39억달러를 넘어섰다. 2024년 양국 간 교역 규모는 133억7000만달러로, 중국은 44억9000만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강화되면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등 국유기업이 이 같은 제재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성사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국교 정상화도 이번 사태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이란이 중국의 손을 벗어나면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 전체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란뿐 아니라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과도 경제 협력을 병행해온 이유도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중국의 균형 전략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영향력 확대 가능성도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오히려 중국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미국의 외교 전략 초점이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 등 태평양 지역에서 해군 활동을 강화하고, 지역 내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이번 공습 자체가 중국의 중동 외교 거점인 이란을 약화시키면서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중동에 자원을 집중시키면 ‘전략적인 피로’가 생길 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 협상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쉬톈천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 수석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군사 개입은 미·중 관세 협상 일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며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합의 시한이 3개월가량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 정세의 불안정성은 중국의 원유 교역에도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스라엘 주재 중국 대사관은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자국민 약 300명을 이스라엘-이집트 국경을 통해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대사관은 “이스라엘-이란 간 충돌이 격화되며 미사일 공격 범위가 넓어지고 사상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내 외국인이 다수 대피했거나 대피 중이며, 육로 국경은 혼잡하고 해외 연결 항공편도 점점 제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