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홍도’는 신파의 원조다. 희생과 순정, 그리고 한(恨)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워서다. 주인공 ‘홍도’는 오빠의 학업을 위해 스스로 기생의 길을 택하고, 명문가 자제 광호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그 운명에 의해 파국을 맞는다.
극단 마방진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10여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홍도’는 배우 예지원, 박하선, 최하윤이 번갈아 홍도로 변신한다. 1930년대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불운한 여인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전형적인 비극을 그린다.
막장 드라마 같은 서사와 달리 무대는 극도의 절제미를 뽐낸다. 새하얀 공간 위에 ‘사람 인(人)’ 자를 형상화한 구조물 하나로 지붕을 대신하고 여백을 통해 정서를 환기하려는 의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만드는 장치다. 여기에 디자이너 차이킴의 한복 의상이 더해지며 색채감이 두드러지는 한국적 미장센을 완성한다.
다만 공연은 형식과 리듬 사이에서 다소 엇박자를 드러낸다. 고선웅 연출의 장기인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대사는 마방진이라는 극단의 고유성. 하지만 비극 속에서 잔재미를 추구하는 빈도가 너무 잦아 서사 안에 쌓이는 골계미로 작용하기에 그 힘이 약했다.
인물의 구성 역시 오늘의 시선에서는 다소 단선적으로 읽힐 수 있다. 흥부와 놀부만큼이나 평면적인 캐릭터는 서사를 보다 직선적으로 이끌지만 그만큼 예측 가능성도 커진다. 더 나아가 여성 인물에게 가해지는 모욕적인 언사나, 기생이라는 존재를 줄곧 천하다며 욕설을 섞어 비난하는 방식은 다소 불편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홍도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원색적 표현이 사회적 감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무대를 지탱하는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홍도뿐 아니라 정보석, 이도유재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의상과 미장센은 독보적이다. 특히 피날레를 장식하는 붉은 꽃길 장면은 홍도(붉은 길)라는 이름이 가진 정서적 핵심을 응축해 보여준다.
관객들의 반응은 양분됐다. 머리 희끗희끗한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지만 그런 시대를 상상하기 어려운 연령대의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한 간극 자체를 공연의 실패로 규정하기엔 ‘홍도’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 붉은 꽃길 위를 쓸쓸히 걸어 퇴장하는 홍도를 통해 한국적 신파와 비극의 정서가 동시대의 감성에도 유효한가 되묻게 된다. 고선웅은 이 작품을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붙잡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그는 “‘홍도’가 지금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 하나 소문 하나로 사람이 완전히 몰락하기도 한다”며 “과거가 현재를 끝까지 지배해서, 한 사람이 갱생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애버리는 사회가 타당한가를 묻는다”라고 말했다.
2026년 봄에 만난 ‘홍도’는 한 가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무대 연출만큼이나 수많은 여백을 남긴다.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이달 26일까지. 다음달 부터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구 수성아트피아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공연한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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