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인터넷 중독’ 책 출간한 박소영 소아정신과 전문의
유튜브-게임 노출 땐 뇌 발달 영향… WHO, 24개월 미만 절대금지 권고
보호자가 시간-장소-콘텐츠 등 사용규칙 정해 일관적으로 관리
부모도 전자기기 사용량 줄이길
그럴 때마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스마트폰, 인터넷 중독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하지만 집안일을 하거나 음식점에서 아이가 소란을 피우지 않게 하기 위해 영상을 쉽게 보여주는 게 현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3∼9세 유아 및 아동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25.9%로 전년보다 0.9%포인트 늘었다.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가 스마트폰 등을 보여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박소영 모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에게 물었다. 박 원장은 최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 전문의들과 신간 ‘중독되는 아이들’을 펴냈다.
―직접 상담한 영유아 중 ‘스마트폰 등 중독’이라고 볼 만한 사례는 어떤 경우였나.“세 돌이 된 아이가 아침에 눈뜬 뒤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상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인터넷 등과 보내고 있었다. 3, 4세까지 가정 보육을 했는데 유튜브를 계속 본 아이도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의 언어가 지연되고 신체 활동이 적어 발달이 느려지자 부모가 문제를 깨닫고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수를 차지한다.”
―영유아가 중독됐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
“영유아 중독에 대한 공식적인 진단 기준은 없다. 영유아는 스스로 유튜브 등을 선택해서 시청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하게 노출되면 아동의 건강한 발달에 영향을 미치므로 위험한 수준인지를 판단해 양육 상황을 점검해 봐야 한다. 아이가 내성과 금단 증상을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같은 시간의 시청으로는 만족감이 줄어들거나 영상이 꺼졌을 때 극심하게 떼쓰거나 스마트폰 등의 영상 없이는 식사와 외출 등이 어려운 아이라면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적어도 몇 세까지는 스마트폰 등에 노출되지 않아야 하나.“세계보건기구(WHO)는 생후 24개월 미만 유아는 절대 노출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또 2∼5세 아동은 하루 1시간 이내에 보호자의 참여 아래 시청하게 권고한다. 6세까지는 마법의 시기로 불릴 만큼 뇌가 급격히 발달한다. 이때 아이가 어떤 자극과 경험을 했는지가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 등은 시각과 청각 중심의 단편적인 자극을 주므로 균형적인 뇌 발달이 어렵다. 특히 전두엽은 3세부터 활달히 발달하는데 반복적이고 즉각적인 자극에 노출되면 인내, 집중, 자기 조절력이 발달할 기회를 놓친다. 신체 활동과 다양한 놀이, 양육자와의 상호작용 시간이 줄어들어 사회성과 언어 발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하루 한 시간 정도 시청할 때 피해야 할 콘텐츠가 있다면….
“화면 전환이 빠르고 과도한 색감이나 소리가 나오는 영상보다는 다소 느리고 화면 구성이 편안한 게 좋다. 또 유튜브의 자동 추천 시스템보다는 부모가 아이가 시청할 만한 콘텐츠를 선별해서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다. 유튜브나 릴스, 쇼츠 등의 자동 재생 기능은 지루함을 견딜 필요가 없어 여기에 익숙해지면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자극을 지루해할 가능성이 높다.”
―집안일을 하거나 식당 등 특정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부모가 많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고 만성적으로 반복되면 특정 행동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영상이 필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이가 밥 먹을 때마다 영상을 보여주면 뇌는 ‘식사=동영상’으로 학습하고 영상 없이는 밥을 거부할 수도 있다. 밥은 동영상을 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하루 일과 중 하나다. 동영상은 특정 상황에서 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대에 시청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시청 규칙은 어떻게 정할까.
“영아는 부모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기의 종류, 시간, 장소, 콘텐츠 등 모든 것을 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면 사용 규칙을 아이와 협의해서 만들어야 갈등 없이 지킬 수 있다. 만성적으로 유튜브 등에 노출됐던 아이는 바깥 놀이나 체육 활동 등 다른 활동을 대안으로 부모가 제시해 주는 게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규칙을 일관되게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귀찮다고 혹은 기분에 따라 사용 규칙을 자주 바꾸면 아이도 지키지 않는다.”
―한글, 영어, 구구단 등을 학습하는 콘텐츠도 많은데 이런 노출도 부정적인가.
“동영상으로 즐겁게 배우는 부분이 있지만 수동적 정보 처리에 가깝다. 학습에 활용하고 싶으면 짧게 시청한 뒤 부모와 복기하며 아이가 동영상으로 습득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재사용할 기회를 줘야 한다. 아무리 학습 콘텐츠라고 해도 아이의 시청 시간이 늘면 살아 있는 경험을 할 시간이 줄어 건강한 발달에 좋지 않다. 특히 언어 학습 콘텐츠는 상호작용 없이 반복 청취만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 발화량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모 스스로도 아이 앞에서 휴대전화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휴대전화 그만 봐’ 하고 10번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는 모습을 1번 보여주는 게 더 강력하다. 가족까리 사용 규칙을 정하는 것도 좋다. 함께 사용할 시간, 개인 사용 시간, 전체 사용량 등을 정하는 것이다. 식탁, 침실, 놀이 공간 등에서는 전자기기를 금지하는 프리 존을 지정할 수도 있다. 필요에 의해 휴대전화나 태블릿을 사용할 때는 목적을 아이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엄마는 지금 병원 예약을 하고 있어’ ‘아빠는 지금 재택근무 중이야’ 등으로 알려준다.”
―아이가 조금 크면 게임 때문에 갈등을 겪는 부모가 많다.
“게임을 얼마나 오래 하느냐보다 왜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었는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학교에 가 있는 시간 외 거의 대부분을 게임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친구 관계에서의 소외감을 게임을 통해 풀고 있었다. 게임 과몰입을 하는 아이들 중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불안, 우울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소아정신과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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