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붓질… 영원히 꽃피는 ‘줄무늬 튤립’

8 hours ago 2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맛보기] 〈2〉 세허르스의 ‘꽃병에 꽂힌 꽃’
1630년대 튤립 투기-버블 현상
한 뿌리 가격, 집 한 채 맞먹어
그림이라도 보라는 듯 자주 그려

다니엘 세허르스의 그림 ‘꽃병에 꽂힌 꽃’. 예수회 수도사였던 세허르스의 그림은 예수회에서 유럽 왕실이나 귀족에게 외교적인 선물로 주기도 했다. 
요하네스버그아트갤러리 제공

다니엘 세허르스의 그림 ‘꽃병에 꽂힌 꽃’. 예수회 수도사였던 세허르스의 그림은 예수회에서 유럽 왕실이나 귀족에게 외교적인 선물로 주기도 했다. 요하네스버그아트갤러리 제공
‘자연의 장미조차/세허르스의 그림 앞에서는/그저 그림자에 불과하다네. (…) 세허르스는 그림으로 장미에 향기를 불어넣었네.’

17세기 네덜란드 시인 콘스탄테인 하위헌스(1596∼1687)가 화가 다니엘 세허르스(1590∼1661)의 장미 그림을 극찬하며 남긴 시 구절이다. 세허르스는 플랑드르(현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수사이자 꽃병이 있는 정물화와 탐스러운 화환(garland)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는 그의 그림 ‘꽃병에 꽂힌 꽃’이 전시되고 있다.

해당 그림은 유리병에 꽂힌 각양각색 꽃들의 자태가 담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화려한 줄무늬 튤립이다. 빨강과 하양, 보라 등 다양한 색과 무늬를 자랑하는 튤립은 당시 네덜란드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네덜란드는 16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에서 튤립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줄무늬’나 ‘불꽃무늬’가 있는 튤립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됐다. 지금은 튤립 품종 개량이 활발해졌지만, 이때만 해도 무작위로 생겨나는 해당 무늬의 꽃들은 매우 희귀해 인기였다. 요즘 식물 애호가들이 ‘갈라진 잎’이나 무늬가 생기는 식물을 더 높은 값에 사고파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줄무늬 튤립을 갖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역사적인 대규모 투기와 거품 현상을 낳았다. 바로 1630년대 일어난 ‘튤립 버블’이다. 귀족과 부유층은 앞다투어 줄무늬 튤립을 갖고 싶어 했지만, 꽃은 피우는 데 수년이 걸리니 공급이 부족했다. 이에 아직 피지도 않은 꽃 구근을 미리 계약하는 등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숙련된 장인의 10년 소득이나 집 한 채, 맥주 공장과 맞먹는 정도로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튤립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어음은 부도가 나고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이에 당국이 거래를 일시 보류하면서 튤립 버블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렇게 귀했던 줄무늬 튤립을, 실물은 아니더라도 그림으로 감상하려는 듯 세허르스의 정물에는 줄무늬 튤립이 자주 등장한다. 또 이 그림엔 연분홍·노랑 장미, 푸른 아네모네가 조연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한 튤립이 부유함의 상징이었다면, 장미는 사랑을 상징한다. 들풀 같은 아네모네는 인생의 무상함을 뜻한다. 세허르스의 극도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유럽 왕실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과 영국 찰스 1세, 스페인 펠리페 4세,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등이 세허르스의 정물화를 수집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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