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칼럼] 마리오 아베, 사자 보이즈 李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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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칼럼] 마리오 아베, 사자 보이즈 李대통령

근대 일본 경제의 초석을 다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관광산업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새 1만엔권 지폐의 주인공인 그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제국호텔 설립을 주도하고 도로 철도 등 관광 인프라 구축에 기여했다. 하지만 일본을 오늘날의 관광대국으로 이끈 진짜 주역은 누가 뭐래도 아베 신조 전 총리다.

아베 2차 내각이 출범한 2012년 방일 외국인 관광객은 835만 명에 불과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오모테나시’(정성을 다한 손님 접대) 정신 등 관광자원은 우수했지만 당시 관광객은 한국(1114만 명)보다 279만 명이나 적었다. 아베는 ‘관광이 경제 성장, 지역 발전, 국가 브랜드 전략의 핵심’이라는 인식에 따라 관계 장관들이 총출동하는 ‘관광 입국 추진 각료회의’와 민관 합동의 ‘내일의 일본을 지탱하는 관광 비전 구상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엔저라는 우호적 환경을 등에 업고 비자 완화, 항공 노선 확대, 면세제도 확충 같은 전례 없는 관광 육성책을 쏟아냈다. 지진, 호우 등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면 ‘관광을 통한 경제 복구’를 강조하며 피해 지역 여행비를 보조해주는 ‘훗코와리’(복구할인)제도 시행했다. 백미는 2016년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슈퍼 마리오 복장으로 깜짝 등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장면이다. 그는 온몸으로 관광을 외쳤다.

이런 노력은 곧바로 수치로 나타났다. 방일 관광객은 2016년 2000만 명, 2018년 3000만 명을 돌파했고, 코로나19 기간 잠시 주춤하더니 지난해 사상 최대인 3687만 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7월 대지진설’을 극복하고 400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관광 소비액 역시 2012년 1조엔에서 지난해 8조1000억엔(약 76조원)으로 불어났다. 이제 전자제품을 제치고 일본의 2대 수출 품목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우리 관광도 최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명소를 찾는 외국인 발길이 이어지며 지난 7월까지 방한 관광객은 1055만 명으로 증가했다. 현 추세라면 코로나19 이전 최고치인 1750만 명을 웃돌 수도 있다. 하지만 12년 만에 관광객은 4.8배, 소비액은 8.1배로 불어난 일본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연간 관광 수입은 일본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은 2030년 관광객 6000만 명, 소비액 15조엔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 정부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부터 총리들이 ‘국가관광 전략회의’를 아홉 차례 열었고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2030년 방한 관광객 3000만 시대’를 국정 과제로 설정했다. 지난주엔 이재명 대통령이 강원도를 찾아 관광산업 활성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문제는 추진력의 차이다. 일본 최고 권력자인 총리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관광을 범국가적 성장동력으로 삼은 것과 대통령이 지방 타운홀 미팅의 한 소재로 관광을 언급한 것은 그 무게감부터 다르다.

관광산업은 인구 감소로 인한 저성장을 극복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룰 핵심 동력이다. 케데헌 현상은 단순한 K콘텐츠의 인기를 넘어 한국이 관광대국으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 주도로 범정부 차원에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과감한 실행에 나서야 할 때다.

다음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환영 리셉션에서 케데헌 속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로 깜짝 변신한 이 대통령을 보고 싶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어쩌면 그런 과감한 시도 하나가 한국 관광산업의 대부흥을 이끄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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