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 정원박람회’ 슬기롭게 즐기는 법[김선미의 시크릿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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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가보니

인도 작가들이 참여한 ‘서울에 머물다’ 정원에서 시민들이 호숫가 의자에 앉아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도 작가들이 참여한 ‘서울에 머물다’ 정원에서 시민들이 호숫가 의자에 앉아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서울숲공원에 간다. 오늘은 어떤 광경이 펼쳐지고 있을까.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궁금해진다. 1일 시작된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서울숲과 성수동 일대가 일상의 동선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만큼 관심도 애정도 깊어졌다.

● 서울숲의 시간을 떠올리기

프랑스 조경가 앙리 바바의 초청정원.

프랑스 조경가 앙리 바바의 초청정원.
이번 박람회에 선보인 정원은 167개. 그중 서울숲에만 131개 정원이 들어섰다. 하루에 다 보기도 힘들고, 다 볼 필요도 없다. 정원 감상은 ‘도장 깨기’ 숙제가 아니다. 박람회가 10월 27일까지 180일간 이어지니 계절마다 차근차근 돌아볼 시간이 충분하다.

서울숲에서 정원박람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숲을 아끼는 이들은 걱정했다. “숲은 숲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고, “도시의 숨통인 공원에 왜 인위적인 정원을 만드는 것이냐”고. 조선시대 왕실 사냥터였던 뚝섬 일대는 상수원 수원지와 경마장, 골프장 등을 거쳐 2005년 서울숲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유독 시민 참여가 활발했던 공원이라 일회성 이벤트에 대한 일부의 우려는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20여 년 전 이 공원의 설계자로 서울숲의 밑그림을 그렸던 안계동 동심원조경 대표도 우려가 컸다. 하지만 박람회를 돌아본 뒤 흡족해했다. “공원의 고즈넉한 운치가 사라지면 어떡하나 싶었다. 하지만 정원들이 요란하지 않고, 공원 배수로와 바닥 포장도 이번에 깨끗하게 정비됐다. 일부 알록달록한 설치물은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된다니 다행이다. 스무 살 넘은 공원이 회춘한 느낌이다.”

이번 정원박람회는 축제이면서 동시에 시험대다. 서울숲이 지나온 시간을 기억할 때,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선명해질 것이다.

● 앉아서 기다리고 바라보기

누군가 이번 정원박람회의 가장 큰 미덕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의자’라고 답하겠다. 박람회가 시작되기 전 2167개였던 서울숲의 의자 수는 이번에 4620개로 늘었다. 덕분에 어디서든 앉아 쉬면서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과 햇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눈으로만 보는 정원이 아니라 머무는 정원이 됐다.

성수구두테마공원의 ‘기다림의 정원’.

성수구두테마공원의 ‘기다림의 정원’.
‘머무름’은 초청 작가와 공모 작가들의 정원 곳곳에 녹아 있다. 성수동 구두테마공원에 들어선 ‘기다림의 정원’은 성수동 팝업 상점들 앞 대기 행렬에서 영감을 얻었다. 도시의 속도를 잠시 늦추자는 뜻을 담은 흰색 조형물 주변에 시민들이 정말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롭게 조성된 정원 덕분에 근처 오래된 구둣가게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경기도 정원의 벤치 아래에서 아이들이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경기도 정원의 벤치 아래에서 아이들이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박람회 초기부터 눈길을 끈 건 경기도가 서울숲에 조성한 길이 30.5m의 벤치다. 경사 지형에 놓여 있어 위치에 따라 의자로도 테이블로도 쓸 수 있다. 어느 날, 벤치 밑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물을 관찰하고 돌멩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곁의 자연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하는 게 정원의 힘일 것이다.

‘다종(多種)적 마주 앉기’라는 정원은 서울숲에 살아온 족제비쑥과 땅강아지 같은 생명체들을 마주 앉아 고요하게 바라볼 것을 권한다. 남산 한양 도성길과 북한산 둘레길을 형상화한 ‘류(流)의 근원’ 정원에서는 어수리와 우산나물 같은 우리 식물들의 사연을 QR코드로 찾아볼 수 있다.

인파를 피해 한적한 쉼터를 찾는다면 서울숲 북쪽 습지생태원의 ‘어반 위빙(Urban Weaving)’ 정원을 추천한다. 도시의 풍경과 식물의 질감을 직조하듯 엮어낸 이 공간은 주요 동선에서 비켜나 있어 호젓하게 앉아 마음을 고르기에 좋다.

● 정원을 일상에서 즐기기

만병초 꽃이 만개한 삼표그룹 기업정원.

만병초 꽃이 만개한 삼표그룹 기업정원.
지금까지의 정원박람회와 비교할 때, 기업들의 참여 방식은 한결 차분하고 성숙해졌다. 일례로 삼표그룹이 조성한 ‘숲으로 가는 길’ 정원은 표지판 말고는 기업 홍보가 없다. 김봉찬 조경가는 그저 호숫가에 길을 내고 제주에서 진분홍 참꽃나무와 만병초를 가져와 심었다. 정원인지도 모르고 걷다가 감탄하는 사람들을 여러 차례 보았다. “어머, 만병초 꽃이 이렇게 화려하고 기품 있었나?” 호수를 바라보는 데크에서는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다도 체험을 했다.

국가유산청의 ‘K-헤리티지’ 정원.

국가유산청의 ‘K-헤리티지’ 정원.
국가유산청의 ‘K-헤리티지정원’은 전통 정원을 도시공원으로 옮겨온 시도다. 경주 최부자댁 후원(後園)의 공간구조를 차용해 야트막한 지형 위에 화계(花階)와 담장, 누마루를 배치했다. 정원에 심은 나무들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 있는 남양주 사릉의 전통수목 양묘장에서 길러낸 우리 고유 수종이다. 이 정원에서 열린 국악 공연에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제가 ‘골든’이 우리 악기로 울려 퍼지자 전통 정원은 동시대 감각으로 피어났다.

산불 피해목을 전시한 클리오의 ‘K-뷰티’ 정원.

산불 피해목을 전시한 클리오의 ‘K-뷰티’ 정원.
기관과 기업의 협력이 눈에 띄었다. K-헤리티지 정원의 누마루는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협력해 만든 화장품 판매 수익금으로 조성됐다. 클리오의 ‘K-뷰티 가든 & 파빌리온’은 국가유산청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발생한 경북 안동 지역 산불 피해 목재를 전시에 활용했다. 정원을 통해 아름다움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박람회 기간 중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농부 시장 ‘마르쉐’(march´e·프랑스어로 장터)가 열린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제철 먹거리와 식물, 생활의 감각을 나누는 장터다. 2일 서울숲 잔디 마당에서 샐러드용 채소를 고르다가 장을 보러 나온 친구를 만났다. 볶아 먹으려고 산 컬리플라워가 문득 꽃다발로 보였다.

학생과 시민이 만든 정원도 둘러보기를 권한다. 규모는 작아도 열정은 뒤처지지 않는다. 그동안 학생 정원과 시민 정원이 대체로 외진 곳에 배치돼 온 점이 아쉽다. 앞으로는 좀 더 주목받는 공간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 전문가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성장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 정원의 의미를 생각하기

서울숲은 이미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번 박람회는 더욱 섬세하게 운영돼야 한다. 단순히 공원을 화려하게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숲의 숨결을 존중하며 도시의 정원 문화를 확장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동시에 정원이 더 절실한 곳은 어디인지 묻게 된다. 이미 녹지가 풍부한 공원을 넘어 아이들이 흙을 밟기 어려운 주거지, 어르신들의 그늘막이 부족한 거리에도 정원이 스며들어야 한다. 누가 초록을 누리는지, 벤치와 그늘을 일상의 권리로 갖는지가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

박람회의 포켓몬 정원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작은 캐릭터에 이끌려 왔을지라도 그 발길이 자연스럽게 정원으로 향한다면 박람회의 가장 값진 성과가 될 것이다. 정원은 도시를 한순간에 바꾸지는 않지만 도시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씩 바꾼다. 매일 지나던 길의 풀 한 포기를 예사롭지 않게 보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정원이 도시에 건네는 가장 조용한 변화일 것이다.

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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