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제 人터뷰]
삼성호암상 과학상 정종경 교수
질병 유전자 유사 초파리로 실험… 유전자 손상→신경세포 죽어 발병
“현재 치료제는 일시적 증상 호전… 근본적 치료제 개발해 소명 마무리”
올해 삼성호암상 과학상 수상자 정종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62)를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알츠하이머병과 함께 인류의 대표적인 노령 난치병으로 꼽히는 파킨슨병의 발병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 개발의 기틀을 마련한 과학자다.
정 교수는 경남 마산고를 나와 서울대 약대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린 시절 시인을 꿈꾸던 문학 소년이었지만 친형을 따라 입학한 약대에서 뜻밖에 기초과학의 세계를 만났다. 정 교수는 “유기화학의 정치(精緻·정교하고 치밀)함에 반했다”며 “톱니바퀴 이빨이 들어맞듯 물질의 원자 구조에 따라 예견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과학이 내가 추구해야 할 진리’라고 결심했다”고 소회했다.
26세에 하버드대에서 세포생물학 전공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암 유전자가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풀며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정 교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블랙박스 안의 실타래를 푸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 실험실에 오전 3시에 출근하면 혼자 오전 9시까지 실험 기구를 마음껏 쓸 수 있었다”며 “실험을 어떻게든 더 많이 해보려고 그 새벽에 들뜬 상태로 뛰어 다녔다”고 회상했다.그가 한국에 돌아올 즈음 과학계에서는 파킨슨병의 원인 유전자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유전자가 실제 어떻게 우리 몸에서 파킨슨병을 일으키는지 그 기전(機轉)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인간과 질병 유전자가 75% 이상 동일한 초파리로 실험을 시작했다. 정 교수는 “일반적인 시각에선 황당한 시도였다”며 “하지만 초파리의 하루는 인간의 1년에 해당하고, 1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파킨슨병의 특성을 고려할 때 최대한 많은 연구를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동료 교수들과 실험실 두 개를 초파리 10만 마리로 채우고, 아르바이트생 수십 명을 고용해 초파리 먹이 주는 작업을 맡겼다.
정 교수는 연구 끝에 초파리의 파킨슨병 원인 유전자를 손상시키면 생체 내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고, 그 결과 신경세포가 죽어 파킨슨병 발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밝혀냈다. 정 교수는 “현재 사용되는 파킨슨병 치료제는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 일시적으로 증상을 호전시키지만, 결국 신경세포가 모두 죽고 나면 더 이상 이런 약이 듣지 않게 된다”며 “우리가 얻은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면 신경세포의 죽음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파킨슨병 환자 수는 2050년 25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도 2022년 파킨슨병 환자 수가 12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 교수는 “지금도 ‘제가 임상에 자원하겠다’거나 ‘꼭 성공해 달라’며 연구실로 전화하는 환자분들이 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분들”이라며 “앞으로 남은 목표는 제 손으로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해 소명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호암재단은 지난달 정 교수를 비롯해 ‘2025 삼성호암상 수상자’ 6명을 선정했다.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 상금 3억 원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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