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최희재 기자] 안방극장에 다시 의사들이 돌아오고 있다. 의정 갈등과 전공의 파업 등으로 편성이 밀렸던 메디컬 소재 드라마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과 방송을 통해 다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 것.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디즈니플러스 ‘하이퍼나이프’,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언슬전) 등 상반기에만 벌써 3편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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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중증외상센터’, ‘하이퍼나이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포스터(사진=넷플릭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tvN) |
전공의 파업 장기화…‘의드’ 타격
지난 12일 첫 방송한 ‘언슬전’은 의사생활을 꿈꾸는 레지던트들이 ‘입덕 부정기’(자신이 어떤 분야나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걸 부정하는 시기)를 거쳐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지난해 2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 사직과 근무지 이탈 등 진료 거부사태가 발발하면서 이 드라마는 직격탄을 맞았다. 의료진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지난해 상반기 방송하려던 ‘언슬전’은 결국 공개를 미뤘고 1년여 표류 끝에 전파를 탔다.
제작사 관계자는 “상반기 공개된 메디컬 소재 드라마들이 좋은 성과를 냈고, 소재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도 많이 사그라들었다는 판단이 섰다”며 “장르적인 신선함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여서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장르의 다양화로 승부수
의료 파업의 장기화로 의학드라마를 보는 대중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 과거에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깊은 감동을 선사했지만, 최근의 파업 사태는 의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냉랭하게 바꿔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클리셰를 답습한다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특정 직업군을 미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의학 드라마는 ‘죽고 사는 문제’라는 극한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같은 의학드라마라도 삶과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여러 장르로 변주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언슬전’에 앞서 공개된 ‘중증외상센터’와 ‘하이퍼나이프’는 각각 메디컬 활극과 메디컬 스릴러라는 장르를 내세워 이같은 한계를 극복했다. ‘중증외상센터’는 현실적인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판타지적인 설정과 결합해 극적인 재미를 선사했으며, ‘하이퍼나이프’는 냉철한 천재 의사의 이야기를 스릴러 장르에 녹여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스핀오프로 세계관 확장
‘언슬전’은 스핀오프(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로 차별화를 뒀다.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의 세계관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인물들과 이야기의 확장을 예고했다. 장르적으로도 ‘슬의생’과 마찬가지로 휴먼 드라마를 표방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의생’을 연출한 신원호 크리에이터는 “‘언슬전’의 강력한 무기는 성장서사”라며 “어마어마한 콘텐츠들 사이에 소소하고 순한 드라마 한 편 있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언슬전’은 1년 편성 연기라는 악재에도 방송 첫 주 4%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부문에서 8위를 차지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의학드라마가 다시 시청자들이 찾는 장르로 급부상하고 있다”면서 “생명에 대한 소중함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더해 장르적인 확장과 작품성이 담보된다면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