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반도체 설비를 오픈AI가 대신 지어준다? ‘오픈 파운드리’ 시대에선 가능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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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로 폐쇄·획일화한 시장구조
인텔, ‘오픈 시스템’ 새 화두 제시
골드러시 시대 일감 가득한 대장간
다급한 고객이 설비 대신 투자하듯
파운드리 기업에 직접투자할 수도

사진설명

비록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고 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인텔 최고경영자 팻 겔싱어가 올해 제시했던 ‘오픈 시스템 파운드리’라는 세계관에 대한 얘기입니다.

인텔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있는 가운데 올해 파운드리 사업을 재정비하면서 겔싱어 CEO는 ‘오픈 시스템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실패로 판명되고 있는 그의 개념이 뭐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복잡한 개념을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지금은 기존 파운드리 시장과 다른 융합형 AI 칩 시대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는 단일칩 제조 공정이 만든 공급자 중심의 폐쇄 구조를 벗어나 완전히 개방된 협력의 생태계가 요구됩니다.

설계부터 조립 규칙, 제작, 검증, 테스트까지 모든 과정이 공급망 생태계에 참여하는 수 백개의 기업들 간 개방돼야 복잡하고 다종적인(heterogeneous) 칩 사양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엔비디아의 AI 칩 생산만으로도 과부화가 걸릴 지경입니다.

비슷한 AI 칩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그만큼 칩 사양은 복잡하고 대기줄은 긴 가운데 설령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더라도 TSMC와 협상에서 명쾌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한정적이고 폐쇄적 파운드리 생태계가 개방형으로만 바뀌어도 고객들은 파운드리 A사에 제작을, B사에는 테스트를, C사에는 패키징을 맡기는 식으로 주문을 분업화하고 보다 신속하게 제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극단적인 분업 사례이긴 하지만 파운드리 기업들의 폐쇄적 세계관이 개방형으로 확장되면 예전보다 고객사 편의가 증진되고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혁진적인 협업 사례도 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텔은 이러한 철저한 개방형 전환을 통해 설령 고객사가 TSMC에서 칩을 제작하더라도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통해 테스트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 대만 공장에서 모든 작업이 진행되는 TSMC의 경우 공장 가동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납기일 지연에 따른 막대한 고객사 피해 발생합니다.

반대로 인텔의 개방형 시스템 파운드리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곳에 칩 제조 공장과 칩 조립·테스트·패키징 현장을 두고 있어 지리 상 공급망 안정성이 뛰어납니다.

AI 골드러시라는 새 시대에 금광을 캐려는 고객들은 즐비한데 땅을 팔 삽과 곡괭이가 부족합니다.

삽과 곡괭이를 만드는 대장간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A대장간은 자기네들이 기존에 구축한 공정에 맞춰서 땅이 더 잘 파지는 디자인을 가져온 고객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반면, B대장간은 반대로 자신들의 공정을 고객에 최대한 맞추는 개방형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인텔은 B대장간과 같은 방식으로 변모해 시장 1등인 A대장간을 따라잡겠다는 목표인 것이죠.

이와 관련해 지난 상반기 주목할만한 뉴스가 있습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자체 AI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위해 5조∼7조달러에 이르는 자본 조달을 목표로 투자자 찾기에 나섰다는 보도였습니다.

이를 위해 올트먼 CEO가 TSMC와 수차례 접촉하고,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보유한 일본 소프트뱅크와도 논의했다고 합니다.

또 올트먼 CEO가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 평택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본 점, 그리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행보가 자체 AI 칩을 만들기 위한 여정과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올트먼 CEO의 행보에서 발견되는 가치도 바로 ‘개방형’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올트먼 CEO는 확보한 투자금으로 수년 안에 10여개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한 뒤 그 운영을 TSMC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인텔이 주창한 ‘개방 시스템 파운드리’ 개념을 여기에 대입하면 비단 TSMC 애리조나 공장 뿐 아니라 오픈AI는 인텔의 애리조나 신공장, 삼성전자의 텍사스 내 파운드리 신공장에 자신들이 원하는 AI 칩 설계를 위해 수 십조원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공급자 중심의 빠듯한 파운드리 시장에서 오픈AI는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제품 확보가 가능합니다.

앞선 삽과 곡괭이 예시처럼 다급한 고객이 대장간을 상대로 삽과 곡괭이를 만들 설비를 대신 지어주겠다고 나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파운드리 회사 입장에서는 첨단 공정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비 지출을 줄이면서도 향후 수 년간 안정적인 고객처 수요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번 돈 대부분을 파운드리에 쏟아붓는 삼성전자의 경우 투자금 확보 부담에 숨통이 트일 수 있습니다.

TSMC나 삼성이 아닌 파운드리 시장에서 미약한 공정과 시장 지위를 가진 SK하이닉스에 이 같은 파격 제안이 들어온다면 SK하이닉스는 단기간에 거대한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인텔의 경우 이 실험적 상상을 파트너 기업과 실제 행동으로 옮긴 상황입니다.

지난해 인텔은 이스라엘 업체인 ‘타워세미컨덕터’를 인수하려 했다가 중국 경쟁당국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됐습니다.

이후 인텔의 미국 뉴멕시코 반도체 공장에 타워세미컨덕터가 수 천억원을 투자하는 방식의 새로운 협력을 단행합니다.

65나노 공정 기반의 이미지센서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를 타워세미컨덕터가 3억 달러를 투자해 대신 구축해주는 방식입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타워세미컨덕터는 인텔 뉴멕시코 공장에 새로 설치되는 장비와 다른 고정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되는 것이죠.

폐쇄적 파운드리 시장에서 개방형으로 고객사에 자사 공정을 내어주고 고객사는 능동적으로 원하는 수준의 칩을 확보하는 상호 윈윈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입니다.

팻 겔싱어 CEO의 이 같은 전략이 과연 TSMC로 획일화한 시장 공급 구조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폐쇄적인 현 시장 구조에 충분한 변화의 화두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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