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공간은 인기 비결을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찾아오는 이들에 의해 증명될 뿐이다. 공간을 반복해 찾으며 경험하고 기록해 누군가와 공유한다. 입소문을 타고 방문자가 늘어나며 ‘핫’해진다. 언뜻 생각하면 사람이 몰려드는 곳을 핫플레이스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핫플레이스가 되기까지의 인과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핫플레이스의 정의를 둘러싼 의문은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곳에 왜 찾아가는가?’
부동산 전문가이자 한양대 겸임교수인 저자 조훈희의 신간 ‘성수동의 시대’는 과거 수제화 공장과 자동차 정비소가 밀집해 있던 성수동이 한국을 넘어 세계 속 핫플레이스로 우뚝 선 이유를 지리·경제·심리·건축 지식을 동원해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축적된 지역의 역사와 자원이라는 콘텐츠가 성수동을 타 지역과 차별화된 핫플레이스 반열에 올렸다고 짚는다. 사람들이 몇 번이고 재방문할 매력적인 ‘이야기’와 ‘콘텐츠’를 보유한 지역이었다는 얘기다. 공장과 창고가 밀집했던 성수동은 제조업 지방 이전의 흐름 속에 소외돼 있었다. 방치된 빈 공장과 창고를 주목한 건 예술가들이었다. 2000년대 중반 홍대나 가로수길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저렴한 임대료에도 끌렸지만, 공장과 창고의 외피를 이루던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의 질감이 주는 독특한 감성에 주목했다.
예술가들의 손을 탄 공장과 창고는 때론 연극 무대가 됐고, 독립 디자인숍으로 변신했으며, 가죽·도예·향수 공방으로도 탈바꿈했다. 성동구도 주민들과 함께 공장과 창고의 외관을 건드리지 않고 내부 기능만 현대화하는 방향으로 도시를 정비했다. 과거의 유물을 청산하는 대신 헤리티지를 최대한 담아낸 콘텐츠를 창조해낸 것이다.
어떤 신축 건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은 골목마다 사람들을 몰려들게 했고 디올·샤넬과 같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도 차별화된 세계관을 담아낸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차별화된 도시 모습에 매료된 이들은 지역에 오래 머물며 물건보다 경험을 소비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등 기록을 자발적으로 공유했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분위기에 이끌린 콘텐츠·정보기술(IT) 기업과 연예기획사도 성수동을 본사 소재지로 삼았다. 벽돌과 콘크리트를 매개로 과거와 오늘을 잇는 성수동만이 보유한 역사와 콘텐츠가 산업과 인파를 움직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수동의 성공은 예외적인 사례일까. 같은 시기 출간된 신간 ‘핫플레이스의 법칙’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이야기와 콘텐츠는 핫플레이스의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이커머스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오프라인에서 제공되는 남다른 경험과 극대화된 주관적 만족감은 더 중요해졌다. 20년 넘게 공간기획자로 일해온 저자 임상백은 이야기와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나아가 ‘플랫폼’이라는 개념으로 핫플레이스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수동을 포함해 경리단길, 망리단길, 익선동, 을지로 등 유명한 핫플레이스는 오프라인 플랫폼의 구조를 갖췄다. 하나의 거리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식당과 카페에 가고, 편집숍과 전시를 구경하며, 느긋한 산책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리는 자연스럽게 방문자가 오래 머물도록 이끈다.
거리 자체가 갖고 있는 이야기와 콘텐츠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가령 을지로는 오래된 공구 상가와 인쇄 골목이라는 역사적 공간 위에 젊은 감각의 주점, 카페, 소규모 전시 공간을 얹었다. 익선동은 전통적 주거양식인 ‘한옥’ 위에 식음료 점포와 전시 공간을 포갰다. ‘도심 속 다른 시간’이 연출된 공간에서 다양한 매장을 방문하며 거리 전체가 주는 경험을 만끽하는 구조다.
“사람들은 특정 매장 하나를 위해서가 아닌 그 길 전체가 주는 경험을 소비하러 간다. 이때 각각의 매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하나의 거리 플랫폼 안에서 서로의 유입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책은 핫플레이스를 구성하는 7가지 기술적 조건도 제시한다. 우선 기존 배후상권이 존재해야 하며, 전통시장이 인접해 있고, 대중교통이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이에 더해 주거가 분포한 골목, 저층 건물의 상가, 보차 혼용 도로, 걷기 좋은 거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지도 분석을 통해 경리단길, 망리단길, 샤로수길을 핫플레이스의 법칙을 명확히 따른 사례로 언급한다.
또 과거를 풍미했거나 현재 이목이 집중되는 장소를 뜯어보며 독자들이 스스로 향후 핫플레이스를 점쳐볼 수 있는 분석 기법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핫플레이스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축적과 정교한 기획이 동반된 결과물이라는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우연처럼 보여도 반드시 이유가 있고, 누군가의 기획과 시대의 흐름이 맞물려 있다. 뜨는 공간에는 늘 이유가 있다.”
성수동의 시대, 조훈희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핫플레이스의 법칙, 임상백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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