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낙원이여(Ô, Paradis!)’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아프리카 여인(L'Africaine)>에 나오는 아리아다. 사대와 장소는 15세기 말 포르투갈과 동아프리카. 4시간 안팎의 프랑스 그랑드 오페라(Grand Oprea)다. 막(Acte) 대신 장면(Scène)을 쓰며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면1. 리스본 궁정. 아름다운 공주 이네시(Inês)는 대항해를 떠난 정혼자 바스쿠(Vasco da Gama)를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는다. 아버지인 왕 돈 디에고(Don Diégo)는 포기하라며 대신에 고문관 돈 페드로(Don Pedro)와의 결혼을 명한다. 그러나 마침내 살아 돌아온 바스쿠. 그는 비록 대업을 이루지 못했으나 아프리카에서 노예 셀리카(Sélika)와 넬루스쿠(Nélusko)를 데려왔으며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감옥에 갇힌다.
장면2. 감옥. 사실 셀리카는 부족의 왕비였다. 그는 시나브로 바스쿠에게 사랑을 느끼고, 반면 신분의 굴레 속에서 왕비를 향한 연모를 억누르던 노예 넬루스쿠는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사이 돈 페드로와 이네시 공주는 결혼하고, 왕궁의 포고가 내려진다. 돈 페드로가 다시 아프리카와 인도를 향한 여정을 떠난다는 것. 물길을 잘 아는 바스쿠를 임시로 특별 사면하고 두 노예를 동반하기로 했다. 사실 이네시가 결혼 조건으로 바스쿠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간청을 해 이뤄진 일이었다.
장면3. 범선의 갑판. 돈 페드로는 조타를 넬루스쿠에게 맡긴다. 그러나 이 노예는 사랑을 잃어버린 복수심에 넘쳐 배를 일부러 위험 지점으로 몰고 가는데, 이를 알아챈 바스쿠가 방향을 바꾸라며 소리친다. 어리석은 돈 페드로는 바스쿠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마스트(기둥)에 그를 묶어 총살을 명한다. 바로 그때 배가 거대한 파도에 부딪혀 부서진다. 난파선에 원주민들이 올라와 셀리카 왕비를 알아보고 그녀는 이네시 공주와 노예 넬루스쿠를 살려주라고 명한다.
장면4. 동아프리카 해변. 셀리카는 왕비 즉위식을 거행하고 다시는 침입자들에게 조국을 뺏기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죽은 줄만 알았던 바스쿠와 혼인예식을 치르려 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네시 공주의 목소리. 바스쿠는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장면5. 왕비의 정원. 왕비는 바스쿠가 자신보다 이네시를 더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곤 두 사람에게 포르투갈로 가는 배를 마련해주라는 자비를 베푼다. 그러곤 해안의 높다란 곶(串)에 놀라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본다. 그러다 바스쿠의 사랑이 없는 자신의 생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셀리카의 죽음. 뒤늦게 왕비의 시신을 발견한 넬루스쿠도 그 뒤를 따른다.
오페라 <아프리카 여인>은 역사서에 나오는 실존 인물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양 항해 2년을 모티브로 각색한 이야기다. 줄거리를 상세히 다룬 이유는, 이 작품의 국내 자료가 미미해 기록용에 보탬이 될까 해서다.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1791~1864)는 독특한 삶을 살았다. 베를린 태생의 독일인이지만 프랑스 그랑드 오페라의 대부로 불릴 만큼 파리서 각광 받았고, 야콥(Jakob)이라는 이름을 이태리식인 자코모로 바꾼 채 활동했다.
오페라 <아프리카 여인>은 마이어베어의 사후 초연된 유작이다. 나폴레옹 3세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성대히 장례식을 치러줬다. 아리아 ‘오 낙원이여’는 다섯번째 장면에서 셀리카 여왕과 결혼을 앞두고 기쁨에 찬 바스쿠가 부르는 아프리카를 향한 오마주(hommage)라고 할 만하다.
[Mario Del Monaco O Paradiso]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1915~1982,伊)가 기막히게 부른다. 성악의 금언(金言) 중 하나로 후두를 내리라는 것이 있다. 후두(喉頭)란 성대의 보호벽을 말한다. 음을 높고 강하게 지속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후두의 저위(低位)가 필수. 물론 고된 훈련이 필요하다. 델 모나코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이를 체화한 가수의 교본일 테다. 탱탱한 테너의 소리를 듣고 싶은가? 델 모나코와 함께라면 가능하다. 1950년 녹음. 이태리어 버전이 더 흔하다. 그래서 프랑스어 ‘파라디(paradis)’가 아닌 ‘파라디소(paradiso)’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